막달라 마리아 교회
지붕이 러시아풍의 이국적인 모습이 이채롭다. 지붕이 금색이다. 이곳은 실제 러시아 황제의 어머니 마리아가 뭍혀 있고 막달라 마리아를 기념하는 교회이다.
이 교회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치고 예루살렘의 파괴를 예언하고 또 재림과 세상의 종말에 말씀하셨던 장소이다. (마 24:1-3, 눅 21:5-7). 아름다운 건물로써 베들레헴의 예수의 탄생장소와 예루살렘의 예수 무덤을 기념했던 콘스탄틴 황제는 이 올리브산 정상에 예수님의 예언과 재림에 관한 말씀을 기념하기 위하여 교회를 지었다. 그러나 614년에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괴되고 다시 십자군에 의해 12세기에 재건 되었다. 십자군의 패배 후 교회는 다시 파괴되고 모슬렘들에게 점령되었다. 1868년에 Aureliade Bossi de la Tourd Auvergne 공주가 이 장소를 사고 프랑스에 기증을 했다. 1875년 공주는 갈멜(Garmel) 수녀들을 위한 수녀원을 지었다. 교회의 복도 벽에는 78개국의 언어로 주기도문이 새겨져 있다. 공주는 이곳에 묻혀있다. 1910~1911년 초대 교회의 유적들이 발굴되었다.
벳바게교회
승천교회와 주기도문교회 중간의 길로 내려가면 벳바게 교회가 나온다
벳바게란 말은 ''무화과나무의 집'' 또는 ‘무화과나무의 밭’이란 뜻을 갖고 있다. 현재 벳버게는 감람산 정상에서 동쪽 베다니쪽으로 10분 정도 걷게 되면 닿을 수 있다. 베바게에는 4세기와 십자군 시대 때에 교회가 있었고, 현재의 교회는 1883년 프란치스카 교회에서 건축한 것이다. 이곳 벳바게는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나귀를 타고 출발하신 장소이며, 또한 나사로가 죽은 베다니로 가실 때 마르다와 마리아가 마중나왔던 곳이다.
예루살렘과 베다니의 중간인 이곳 벳파게 순례객들이 비교적 없어 아주 한산해 보이며, 교회문도 늘 잠겨 있다. 방문코자 할 때는 문 주위에 있는 종이나 벨을 울리면 문을 열어준다. 아랍인 지역에 있고 담에는 낙서가 있어 지저분하고 문도 잠겨 있어 애써서 찾아 온것에 비해 다소 실망하지만 일단 교회 안으로 들어서면 벽에 나사로의 부활 모습, 예수님의 입성모습, 그리고 입성행렬의 그림은 다소 흥분이 된다. 교회안 제단 옆에 크기가 1m정도되는 큰 바위가 있는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예수님이 나귀를 타실 때 딛었던 바위라고 한다. 현재에도 종려주일이면 경찰들의 호위와 보호를 받으며 수천의 군중이 참여한 가운데 종려주일 행진이 이곳에서 시작된다. 이 행진은 일찍이 4세기 때부터 시작된 오래된 전통이다.
예루살렘에서 감람산을 넘어 감람산 동쪽 기슭에 위치한 마을이다. 이곳에 가는 길은 감람산을 넘어 벳파게를 지나 IKm정도 걸어 내려가든지, 아니면 아랍인 버스정류장에서 43번 버스를 타고 감람산 남쪽을 돌아가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현재 베다니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가 1948년 이후에 정착한 아랍사람들이며 대부분이 가까운 예루살렘에서 일을 하고 있다. 신약성경에 의하면, 베다니는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요단강 건너편 지역으로써 세례요한이 그리스도를 증거한 곳이며(요1:28), 특히 예수님께 사랑받던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나사로의 고향으로서 이곳에서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이적을 행하셨다.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요 11:43-44). 나사로의 무덤을 중심으로 생긴 마을로서 아랍어로는 ''엘 아자리에'' (el-Azariye)라고불리고 있다. 이는 곧 ‘나사로의 고향’이란 뜻을 지닌 라틴어 ‘라자리온’과 흡사한 호칭이라 하겠다. 베다니에는 다음과 같은 성지가 있다.
베다니 나사로교회(Franciscan
Church of St. Lazarus)
나사로의 무덤을 나와 밑으로 20m정도를 내려가면 은색 둥근 지붕의 프란치스카 교회가 있다. 주후 4세기와 6세기에 있었으며 이때의 유적이 교회 뜰과 교회안의 모자이크 바닥에서 볼 수 있다. 이 교회는 1954년 이탈리아의 건축가 발루지(Barluzzi)에 의해서 세워졌는데 발루지는 이외에도 많은 교회를 성지에 건축한 유명한 건축가이다. 교회의 전체구조는 가운데 둥근 지붕을 중심으로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다. 교회 앞 정면에는 장식된 모자이크가 있고 좌측에 종탑이 있다. 둥근 지붕 안에는 비둘기를 모자이크한 48개의 금도금한 접시가 장식되어 있다. 교회 안에는 북쪽과 남쪽에 두개의 제단이 있는데, 관의 모양을 한 돌에는 나사로의 죽음과 부찰의 장면이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윗벽에는 무덤에서 나오는 나사로의 모습, 예수님을 맞이하는 마리아와 마르다, 예수님의 발 아래서 말씀을 듣는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붓는 여자의 장면이 네벽에 모자이크로 그려져 있다. 교회앞 뜰에는 1964년에 이곳을 방문한 교황 피우스 6세(Pope Pius VI)을 기념해서 동상이 있다. 교회를 나와서 다시 나사로 무덤을 지나 언덕으로 올라가면 좌측에 1965년에 십자군 시대의 교회터 위에 세워진 그리스 정교회 소속 나사로 교회가 있고 골목을 끼고 맞은편에는 교회와 고아원이 있다. 그리고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우뚝 솟은 십자군 시대의 탑이 있다.
나사로의 무덤위에 두 교회가 서 있다. 첫번째 교회는 지진으로 무너지고 두 번째 교회는 614년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12세기에 십자군들이 세 번째 교회를 세웠다. 라틴 왕국의 멸망 후 모슬렘들이 이 성소를 차지하였다. 19세기에 와서 겨우 프란치스칸들이 장소를 살 수가 있었다. 1949년에 오래된 집들을 재건한 후 4세기 때의 아름다운 모자이크와 십자군 교회의 버팀벽을 앞마당에서 볼 수 있다. 현재의 교회는 1952년 전 교회의 기초 위에 지어졌다.
나사로 무덤(St. lazarus Tomb)
나사로가 묻혔던 무덤을 중심으로 교회가 처음 세워진 것은 비잔틴 시대였다. 그러나 4세기 말엽에 지진으로 무너졌고 십자군 때 세워졌던 교회 역시 1187년 살라딘에 의해서 완전히 파괴되었고 14세기경에는 이 자리에 회교사원이 들어섰다. 그 후 회교인들과 이곳을 찾는 순례객들 간에 잦은 마찰로 인해 16세기경 프란치스카 교회에서 현재의 입구를 만들어 놓았다. 마치지붕을 뚫듯이 무덤위에 두껍게 덮여있는 바위를 파내어 만든 통로이다. 좁고 급경사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옆에 부착된 손잡이를 잡고 27개의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더라도 시신을 눕혔던 자리는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소나마 내려다 볼 수 있게 윗쪽에 조그마한 창구를 만들어 놓았다. 또한 밑에 포복자세를 해야 만이 들어갈 수 있는 조그만 입구를 만들어 놓기는 했지만 체구가 작아야만 가능하다. 무덤 바로 옆에 회교사원과 첨탑이 있다 원래의 입구는 교회와 무덤 사이에 지은 회교 사원으로 인해 막혔다. 17세기는 프란치스칸들이 현재의 입구를 만들기 위한 허가를 받았다.
예루살렘성은 유다의 해발 760m의 돌산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성 서쪽과 남쪽으로는 힌놈의 골짜기로 내려가며, 동쪽은 기드론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올리브산과 갈라져 있다. 기드론 골짜기 상류에 왕들의 무덤이 있어 왕들의 무덤 골짜기로도 불린다. 전면의 돌무덤은 스가랴 예언자의 것이며, 뒤쪽은 아랍인 공동묘지이다. 예루살렘 성벽을 둘러싸고 많은 무덤이 있는 것은 [최후의 날]에 예수님이 다시 오실때 육신과 함께 부활하겠다는 신앙심 때문이다.
기드론 계곡은 올리브산과 예루살렘 시를 분리한다. 이 계곡을 예수께서 여러 번 지나다니신 곳이다. 미문을 통해 성전에 올라가실 때 겟세마네 동산이나 나사로의 집 베다니에서 밤을 새우실 때 올리브산을 오르기 위하여 이 계곡을 건너셨다. 목요일 밤에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을 하시고 겟세마네로 가시기 위하여 이 계곡을 제자들과 함께 건너셨다. 기드론 계곡에는 네 개의 오래된 무덤이 있는데 압살롬, 여호사밧, 야고보, 스가랴의 것이다. 전승에 의하면 기드론 계곡에서 마지막 심판이 있을 것이라 한다. 그러므로 기드론 계곡에는 예부터 유대인, 모슬렘, 기독교인들의 큰 묘지가 형성되어 있다.
'여호사밧의 골짜기' 라고도 하는데,기드론 골짜기는 천연 요새와 같은 지형을 갖고 있다. 성경에는 마지막 심판의 장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서 10분정도면 이곳에 다다를 수 있고 여기서 감람산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가 소요된다.
기혼샘은 기드론 골짜기에 있는 샘으로 예루살렘에 있어서 중요한 물의 원천으로 오늘날은 '처녀의 샘' 이라고 불린다. 기혼(Gihon)이라고 하는 히브리 명칭은 원래 이 샘이 한 자연동굴로부터 매일 2-5회 정도 분출되는 간헐천이라는 사실에서 유래되었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공격할 당시 그곳에 살고 있던 여부스족들이 지하에 만들어둔 수구 즉 기혼샘물을 끌어오는 도랑을 통해 침투하여 성을 정복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삼하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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