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내가 본 세상 (국내)

오죽헌

동네 사람들(통하니) 2008. 9. 21. 16:08

추석 연휴

매년 똑 같은 명절이지만 매년 다른 명절이기도 하다.

올 해는 아들이 짬을 내어 여행을 하기로 했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그런대로 의미를 두어본다.

강릉으로 오다 오죽헌을 들렸다.

 

오죽헌(烏竹軒)

보물 제165호

사임당 신씨(1504~1551)와

아들 율곡 이이(1536~1584)태어난 유서깊은 집이다.

 

                                    

                                       -  사임당.  이름-신인선 -

                       사임당 신씨는  현모양처의 본이 되는 분이며 뛰어난 예술가였다.

 

 

                                

                                             --이 율곡 선생--

                            사임당 신씨의  아들로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시대의 훌륭한 학자였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석담(石潭)·우재(愚齋).

 

 

 

 

 

            오죽헌 정문

         

           오죽헌은 조선시대 문신이셨던 최치운(1930~1440)이 지었고 우리나라 건축물 중에

           오래된 건물로 손꼽히는 유서깊은 역사를 가진 건물이다.

 

          1975년대대적인 정화사업을 하여 오늘의 모습을 갖춘 명소로 되었다

 

 

 

              

 

 

 

 

 

          

             정문을 들어서면 자경문(自警門)앞에 이르고 이 자경문 안쪽을 오죽헌이라 할수 있다 

 

 

          

 

 오죽헌이라는 이름은              

             대나무  줄기의 빛깔이 까마귀처럼 검은 색이어서 생긴 이름인 오죽(烏竹) 에서 유래도었다  

 

오죽헌은 원래 수재 최응현의 집이었는데, 둘째 사위인 이사온에게 상속되었다가 이사온의 딸 용인 이씨에게 상속되었다.

용인 이씨는 딸을 다섯 두었는데, 재산을 물려줄 때 외손 이이에게는 조상의 제사를 받들라는 조건으로 서울 수진방 기와집 한 채와 전답을 주었고, 권처균에게는 묘소를 보살피라는 조건으로 오죽헌 기와집과 전답을 주었다. 외할머니로부터 집을 물려받은 권처균은 집 주위에 검은 대나무가 무성한 것을 보고 자신의 호를 오죽헌(烏竹軒)이라 했는데, 이것이 후에 집 이름이 되었다.

 

                           

 

 

          

 

 

        

 

 

           어제각

           1788년 정조 임금의 명령으로 어제각을 지어 율곡의 유품인 『격몽요결』의 원본과

          용인 벼루를 보관하게 하였다 

             지금은 기념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으며

            현재 어제각에는 율곡 이이선생의 초상화, 오죽헌과 벼루가 도안되어 있는

            5천원권 지폐가 전시되어 있다.

 

 

 

 

 

 

           

 

            

             1975년 오죽헌 정화사업 때 율곡 이이 선생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문성’은 1624년 8월 인조대왕이 율곡 선생에게 내린 시호로 '도덕과 사물을 널리 들어 통했고 백성의 안위를 살펴 정사의 근본을 세웠다.
(道德博聞 安民立政)'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원래 이 자리에는 율곡 선생이 쓴 <<격몽요결>>과 벼루를 보관하기 위해 건축된 어제각이 있었으나 사랑채 북쪽으로 자리를 옮기고, 문성사를 건립하여 율곡 선생의 영정을 모셨다.

 

이이 선생 영정은 이당 김은호가 그린 것으로 1975년에 표준영정으로 선정되었다. 선비들의 평상복인 심의를 입고 검은색 복건을 쓰고 있다.

현판 글씨 ‘문성사’는 박정희 대통령이 썼다.


 

 

 

사임당은 4남 3녀를 두었는데 그중 맏딸 매창,

셋째 아들 율곡 이이,

넷째 아들 옥산 이우는 학문적, 예술적으로 성취를 이룬 인물들이다.

율곡기념관에는 사임당과 그 자녀들이 남긴 작품이 전시돼 있다.

율곡 이이의 유품으로는 율곡전서와 간찰이 전시되어 있다.

율곡전서는 이이의 저작을 집대성해 놓은 책으로 전체 23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간찰은 짧은 글이긴 하나 본인이 직접 쓴 것이어서 이이의 생활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사임당의 유품으로는 습작매화도, 초서병풍, 초충도병풍 등이 전시되어 있다.

초충도는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식물과 벌레를 소재로 그린 그림으로,

사소한 사물을 섬세하게 조형화한 사임당의 재능을 살필 수 있는 대표적인 유품이라 할 수 있다.

매창의 유작인 매화도는 조선전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는 때의 묵매 양식을 잘 보여주며,

옥산 이우가 쓴 귀거래사는 초서로 뛰어났던 이우의 필력을 잘 보여준다.  

 

 

이외에도 향토 민속 박물관과 강릉시립박물관이 있어 고분과 유적을 볼 수 있다.

 

 

 

 

 

너와지붕:

 얇고 넓은 판재로 이은 지붕을 말한다. 강원도 산간의 까치구멍집이 너와집인 경우가 많다. 가로 20㎝ 세로 30㎝ 정도의 송판을 1치 정도의 두께로 판재를 만들어 이은 지붕인

 

 

 

묘:

두개의 항아리에 시신을 넣어 매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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