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옳은 사고방식 틀린 사고방식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
8-10)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은 우리의 생각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틀린 생각을 하면 틀리게 믿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잘못되면 우리의 고백도 잘못됩니다.
바꿔 말해서 우리가 틀린 고백을 한다면 그 모든 것은 잘못된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각을 바로잡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마가복음 11: 23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 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보통 우리는 믿음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만, 고백 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많이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른 생각을 하기 까지는 바르게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우리는 우리가 가진 하나님의 말씀 이상은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형이상학적인 것(metaphysical)이나 심령과학종교
사람은
육체적인 존재인 반면,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함으로써 자기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전 2: 16) 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기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분의 말씀을 공부하고 그의 심령으로 믿으며 말씀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든지 진실 되고,
정직하고, 옳고 순수하고 사랑스럽고 선한 보고가 있거나 무슨 덕이 있든지 칭찬할 만한
것이 있든지 이런 것들만 생각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에 대하여 많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생각이 두 개의 다른 근원으로부터 우리 마음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들어온 생각들은 항상 마음에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마귀는 많은 생각들을 밖으로 부 우리 마음속에 집어 넣습니다.
이것이 한 근원입니다. 물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각들은 우리 안에서 나옵니다 이런
생각들은 우리 영을 통하여 우리 마음으로 들어 옵니다 당신이 기도와 묵상과 그 분의 말씀을 공부함을 통해 주님과 가깝게 교제를 유지하고 있으면
당신은 당신의 생각의 근원을 구별하는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당연히 악한 생각은 마귀로부터 온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사랑이며,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악한 것을 듣지 않고 악한 것을 보지 않습니다 이런 생각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믿는 것을 언급하는 성경 구절들을 가지고 믿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마음으로
믿고 있는 것이지 그들의 심령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그리스도 인 들이, 생각하는 것을 언급하는 성경 구절들에 있어서 이해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이 주제의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이 다 있지만, 긍정적인 면이 더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고백”에 대해 말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죄나 약한 것이나 실패를 고백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성경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 : 19)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고백의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면에 관해서 훨씬 더 많이 말 하고 있습니다. 만일 사람들이 이것을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그들의 삶과 사고 방식에 큰 차이를 가져왔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직 고백의 한 면, 즉 부정적인 면만 설교하는
것을 들어왔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부정적인 면 즉 “너는 하지 말라” 는 면만 실천해 왔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서 10: 9 에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주 예수를 고백하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죄의 고백도, 약한 것을 고백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대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계속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이것은 부정적인 고백이 아니라 긍정적인 고백입니다! 사실 기독교는
‘위대한 고백’ 이라고 불러졌습니다 히브리서 3; 2 은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이며 대 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백이라는 단어를 정의하면
첫째, 고백은 우리가 믿는 것을 확신하는 것
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증언하는 것 입니다.
세 번째는, 우리가 주장하는 진리에
대해서 증거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 지어다” 사탄의 지배로부터 속량 되었음을 계속해서 고백하는 것과 사탄이 더 이상 정죄함과 두려움과 질병으로
우리를 지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고백이 사탄의 패배이기 때문에 우리는 고백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귀를 2 천년 전에 패배
시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합법적으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일이 우리의 삶 가운데서
생생한, 살아있는 실제가 되야 합니다. 속량의 체험적인
면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우리 속량의 두 가지 다른 면,
즉 법적이인 면과 체험적인 면의 차이를 우리가 분명히 알 때 까지는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속량의 법적인 면을 이런 것 입니다. 우리는 흔히 “ 하나님 이 사람을 고쳐 주십시오 혹은 “하나님 저 여자를 구원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에서는 하나님은 이미 이 사람들을 고쳐 주셨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신과 화목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를 구원하기 위해서 다시 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은 더 이상 자신의
피를 흘리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의 속량을 위해서 필요한 모든 일을 다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속량의 법적인 면만 다루고 그것만 설교한다면, 사람들을 그들의 삶에서 어떤 것도 실제로 체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반면 속량의 살아 있는 면, 즉 체험적인
면만 설교하게 되면 들판의 불과 같은 광신 주의와, 극단주의를 낳습니다. 설교자가 속량의 체험적인 면만 설교한다면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동떨어진 경험을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둘 사이에 균형을 유지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속량을 통해 법적으로 제공하시는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합법적으로 우리를 위하여 값을 지불하고 일하여 미련해 주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심령으로 믿고 그것이 진리이며 우리의 것이라는 것은 우리 입으로
고백할 때 경험적으로 우리의 것이 됩니다.
예수님은 죄를 용서해 주셨지만 우리는 속량 안에서 죄의 용서보다 더 많은 것을 가기고 있는데 그것은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아 계실
때까지 속량은 우리에게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말로하면 새 언약(혹은 새 약속)의 대 제사장이 효력을 나타낼 때 까지는 새로운
창조가 힘을 발휘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언약아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거듭난 후에도 죄를 짓는다고 해도 그 사람은 다시 죄를 지을 때마다
거듭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은 오직 단 한번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그의
죄는 여러 번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죄를
짖는 믿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이것입니다 “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요일
우리가 본 바와 같이 로마서
죄인들은
단순히 하나님께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
사랑하는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말씀에 따라 나는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게 하시려고 보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의를
통해서 속량이 내게 허용되었습니다. 나는 말씀을 따라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신 것을
믿습니다. 나는 주님이 죽음에서 부활한 것과 주님께서 나를 의롭게 하신 것을 믿습니다. 나는 지금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고백하며 내 마음에 모십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대로 생각하고 성경이 말하는 대로 믿는 것입니다. 말씀을 고백하는 것은 사람의 영에 구원의 실재를 창조합니다.
생각하는 것이 바르게 되면 그의 믿는 것과 그의 고백이 바르게 되고 그러면 그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데 있어서 흔들리지 않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반면에 그가 충분한 가르침을 받지 못하면,
마귀는 그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을 이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패배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서 이미 다 이루신 것들을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면 그는 그의 믿음의 고백을 굳게 붙잡는 방법을 모르게 되고 마귀는 그 상황을 위장하여 그가
구원 받지 못한 것처럼 느끼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로 거듭난 신자가 작은 실수만 하여도
마귀는 그에게
“너 일을 저질렀구나, 아주
포기하고 그만 두는 게 어때 “! 라고 말하려고 할 것입니다.병 고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백은 사탄의 패배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히브리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 십니다.
“나는 그들을 위해서 죽었다 나는 그들의 죄를 가져갔다. 나는 그들을 속 량 하였다, 그들이 내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나는 그들의 죄를 위해서 나는 그들의 죄를 위해 죄가 되었다.
나는 그들의 연약함을 가져갔고 그들의 병을 짊어 졎다.
나는
그들을 어둠의 세력에서 구원했다. 나는 그들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듦으로써 그들을 새롭게
지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고백이 우리를 감옥에 가두든지 우리를 감옥에서 풀어놓든지 둘 중에 하나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고백은 우리가 믿는 것의 결과이며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은 우리의 옳고 그른
사고방식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입술을 통하여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하실지 혹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무엇을 하실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빌립보서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 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일 하 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따로 떨어져서 일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교회에 권세를 주고 세상에 거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 집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돕는 분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행동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잘못 생각해 온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하시도록 하라”는 말은 그릇된 말입니다 성령님은 그것을 하라고 보낸 분이 아닙니다.
“나는 너희가 아무도 도울 자가 없이 버려두지 않겠다. 나는 너희에게 올 것 이다. 나는 너희에게 다른 돕는 자를 보낼
것이다”
‘ 도와주기 위해서 겉으로 부름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우리를 대신해서 일하라고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기 일을 하도록 도우라고 성령님을 부내셨습니다.
너무나 많은 경우에 성령님이 모든 일을 하도록 남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모든
일을 다 하신다면 우리는 선교사들을 보낼 필요조차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이 친구가 자기 죄를 생각하게 해 주십시오. 죄에 대한 책망을 강하게 받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에게
해 주기 전에는 죄책감은 결코 그에게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는 그는 책망을
받지 않을 것 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0장
13,14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오,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오,”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 하는 것을 통하여 사람이 구원을 받도록
하나님께서 정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성령님은 우리를 도우라고 보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입술을 통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간을 우리는 교회에서 복을 받기만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사람들을 보내 주십시오” “주님 주님이 나가셔서 사람들을 구원하십시오.
그러나 문제의 진실을 이것은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들여오도록 하시고, 그들을 구원하는 일을 돕는 성령님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일을 기꺼이 하지 않는 한 우리는 성령님이 우리 대신 그 일을 해 달라고 오랜 시간
기도하면서 시간만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약속은 그것이 이루어지기 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고백 되어야 만 합니다. 말씀에 따르면 그것은 이미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삶에서 그것이 실재가 되려면 당신이 그렇다고 고백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이 누구인지를 고백하고 그 사실을 주장하고 그 진리 안에서 살
때, 당신은 법적으로 당신의 소유로 되어있는 실재를 실제로 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어린 아이 그리스도인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이 누구인지를 결코 완전히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새롭게 만들어진 피조물 즉 새로운
창조입니다. 고린도후서5; 17의 어떤 번역은
“그는 새로운 종자다.”라고 했습니다. 이 새로운
피조물은 전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그냥 용서받은 죄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난하고 약하고 넘어지고 겨우 살아가는 교회 멤버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우리가 모세의 율법을 바라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범하는데 대한 벌이
가난, 질병, 영적 죽음으로서 삼중적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와 영적 죽음에 팔려 사탄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속량하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속 량을 얻었고, 우리가 거듭나는 그 순간,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그 순간, 사탄은 우리의 삶에 대한 지배권을 잃어버렸습니다. 전에는 사탄이 우리의 주인이요 지배자였습니다. 사탄이 우리를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며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로마서 6; 14 절은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라. 어떤 것 이든지 당신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으면 그가 당신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죄와 사탄은 동의어 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그 뜻하는 것과 의미 하는 것에 있어서 거의 비슷하거나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사탄이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아래
있음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머리입니다. 주님은 교회의 머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며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들이고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인 것입니다 사탄이 그리스도의 몸을
지배할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며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다스림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이 만일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면 그는 교회 즉 그리스도의 몸을 지배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 되심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탄에게 더 이상 지배 받지 않기 때문에 질병이나 아픈
것이 더 이상 우리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옛 습관도 우리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그리스도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말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우리의
영에 실재가 될 것이며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정복자가 될 것이며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2; 11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지가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당신은 어떤 사람이 말하는 것을 통해 그의 영적인 위치를 항상 파악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속 량에 대한 성경 구절을 외우고 그 말씀들이 자신들에게
실감이 나도록 기도합니다. 그들이 그 리스도 안에서 거듭났다면 그 말씀은 그들의 삶에서 이미
진실이라는 것을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할 것은 오직 손을 내밀어 이 약속을 취하고 자신들을 위해서 전유함으로써 이 약속들을 자기
것으로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미 영적으로 당신의 것인데도 당신이 알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이 당신에게 아무
유익이 없을 것입니다. 법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경험적인 관점에서 당신은 그것을 당신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잘못된 생각, 잘못된
고백, 잘못됨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울한 구름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바른 생각과 바른 고백과 바른 믿음을 기진다면 우리는 우울한 구름이 우리를 떠나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의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그 분의 말씀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는 이야기 > ♪♪책을 읽고 ♪♪'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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