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의지에 대한 권세가 아니라,
마귀의 영들에 대한 권세
우리는 우리가 인간의 의지에 대해서도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므로 많은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귀신들에 대하여 권세를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의 삶이나 가족들의 삶에 관한 한 권세를 사용하여 귀신들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관계될 때에는 항상 귀신들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개인의 의지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수 년 전, 이 곳 오클라호마에서 집회를 열고 있을 때 나는 치료받기 위해 줄 서 있는 병자들을 위해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나는 속으로 직감하기를 - 나는 내적 증거로 이를 알았습니다. - 누군가 이 줄에 서 있는 자 중에 귀신 들린 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귀신 들렸다는 것은 귀신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 - 이것은 귀신에 사로잡힌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 은 아닙니다.
귀신에 사로잡힌 상태(to be possessed)는 영 혼 육이 완전히 귀신에게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당신도 귀신에 사로잡혀 있지 않고서도 당신 몸에 귀신을 가지고(to have a demon,귀신들려)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주위를 계속 둘러보았습니다. 그 남자가 나로부터 네 사람 안에 들어섰을 때 나는 그 안에 귀신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다음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마귀는 어떤 것을 알고 있기는 합니다만 모든 것을 아는 것, 즉 하나님처럼 전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귀신의 정신적 능력 때문에 당신은 마귀도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점쟁이들은 일어날 일을 잘 알아 맞추기도 합니다. 마귀는 당신의 어떤 생각까지도 알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독심술 하는 사람들도 당신의 마음을 읽고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런 일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ㅇ이 내 앞에 서기 전에 나는 혼자 생각하기를 그 귀신을 그에게서 쫓아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아무런 큰 소리도 치지 않고 그렇게 생각만 했습니다. 그가 앞자리에 가까이 왔을 때 내가 말도 하기 전에 그가 말했습니다. 그 귀신이 그를 통하여 애통하며 째지는 콧소리로 “당신은 나를 쫓아 낼 수 없소!” 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예수 이름으로 나는 할 수 있다”라고 말하니까, 그는 “아니요, 당신은 할 수 없소! 이 사람이 내가 여기 있기를 원하오, 그가 원하면 나는 여기 머물 수 있단 말이요”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네 말이 맞다”라고 말하고 그를 지나쳐 버렸습니다.
종교적인 영들
그에게 말하는 동안, 나는 그가 어떤 영을 가지고 있는 지 알아 냈습니다. 그것은 종교적인 영(religious spirit)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영들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 영들은 사람들을 매우 종교적인 것처럼 행하도록 만듭니다.
실제로 이 사람에게는 세 가지의 악령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다른 두 가지는 속이고 거짓말하는 영들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성경과 동양 종교들을 혼합해서 믿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소 동양 종교 쪽으로 더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나는 이 사실을 그에게 이야기하고서 “그 믿음들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그 믿음은 신약성경을 따르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성경이건 아니건 나는 이대로가 좋습니다. 나는 이대로 살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당신이 그 귀신들을 내 보내고 싶으면 언제든지 나를 찾아오십시오. 그러나 당신이 그 상태를 원하고 있는 이상 당신은 늘 그 상태로 살 것입니다”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는 글쎄요, 나는 이 상태를 원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유의지기 이긴다.
당신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사람들 안에 있는 마귀에 대하여 아무렇게나 권세를 행사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과 당신 가족의 삶에 대해서만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 속에 있는(비록 그들 안에 마귀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마귀를 쫓아 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 자신의 삶에 관하여 권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도움을 원할 때는 별개의 문제가 됩니다. 가끔은 성령 충만한 사람들도 도움을 원치 않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1954년, 나는 처음으로 오래곤 주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주일 저녁에 복음적인 내용으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월요일 밤에는 믿음에 관하여 설교를 했습니다. 화요일 밤에는 신유 집회를 할 것이라고 광고를 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나는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든지, 성령 세례받기를 원하든지, 치유받기를 원하든지 한 줄로 세웠습니다. 나는 한 사람씩 상대하였습니다. 그 때 한 남자가 모든 말을 하고 그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는 한 여인의 순서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녀의 외모만 보아도 그녀가 정신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 남자는 자기 부인이 매우 신경질적이며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께 한 가지 지적할 것이 있습니다. 당신은 무조건 영적 권세를 그 자체만 가지고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영적인 나타남을 소유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원인입니다. 그들은 지식의 말씀이나 영 분별력도 없이 영들을 다루려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전에 한 번 저에게 ‘마귀· 귀신들 · 귀신에게 사로잡힘‘ (demon possession)에 관하여 말씀하실 때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환상에 관항 주요 저서는 나는 환상을 믿는다.」 예태해 역, 도서출판 아바벨 간행 - 역자 주), 주님은 점치는 영이 들렸던 소녀를 예로 사용하셨습니다. 그 서녀는 바울과 실라를 따라 빌립보를 돌아 다녔습니다.
사도행전 16;18에 의하면 “여러 말을”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17절)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게 “너는 왜 바울이 첫날 그 영을 다루지 않았는지 이유를 알고 있느냐”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나는 “정말로 모르겠습니다.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해 왔었습니다. 왜 하나님의 사람, 권세의 사람, 사도 바울이 첫날 악한 영에 대하여 권세를 행사하지 않았습니까? 라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는 성령의 나타남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는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영들을 분별할 수 있도록 하기까지 기다려야만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당신은 마귀를 당신과 당신의 집으로부터 언제든지 쫓아버릴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당신의 영역 안에 있다면 당신은 그 사람에 대하여 권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당신의 영역을 벗어날 경우에는 악한 영들도 그 곳에 있을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이 세상의 신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그 귀신에게 사로잡힌 소녀를 구원하기 위해 수일간 기다렸던 이유입니다. 그는 소녀가 그를 따라 오기 시작하던 첫날 그 귀신을 그 소녀에게서 떠나도록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때가 오기를 기다렸고, 그 때가 오자, 그는 마귀에게 말하였고, 그 마귀는 그녀에게서 나왔습니다.
내가 치유받기를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던 그 여인에게 손을 얹었을 때 나는 다른 영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식의 계시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나는 내 사역에 영을 분별하는 은사가 역사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지식의 말씀은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녀에게 손을 얹었을 때 그녀의; 인생이 마치 텔레비전 화면을 보고 있듯이 내 앞에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녀의 삶 전체를 알았습니다. 나는 그녀의 남편에게 말하기를 “나는 그녀를 공개적으로 하지 않겠습니다. 그녀를 목사님 연구실로 데려 가십시오, 이 집회가 끝난 후에 목사님과 함께 내가 당신들 두 사람과 만나 이야기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데리고 갔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나와 목사님은 연구실로 갔습니다. 나는 그에게 “목사님께서 여기서 증인이 되어주실 것입니다. 목사님은 당신의 아내에 관하여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 주에서 나를 아는 사람은 목사님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나는 당신이나 당신의 아내를 본 적도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왜 당신의 아내를 공개적으로 다루지 않았는지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당신의 아내에게 손을 얹었을 대 저는 제 심령으로 - 나는 순식간에 모든 것을 복 수가 있었습니다. - 당신의 아내는 언젠가 한 번 어떤 목음 전하는 자가 주께서 자기에게 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말했었다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녀는 지기에게도 하나님께서 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말씀해 주신 것을 간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알고 있지 못한 것은 그 복음 전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런 식으로 말씀해 주시기를 간구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단지 하나님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당신이 만일 들을 수 있는 음성을 구하기 시작하면 마귀는 당신을 이용하려 할 것입니다. 이것은 잘 못된 것입니다)”
“귀신들이 그녀에게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나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그녀는 이 음성들을 듣기 시작한 것이지요. 귀신들이 그녀를 미치게 만든 것입니다. 당신은 그녀가 정신병원에 한번 아니라, 두 번 입원했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녀의 남편이 ”누가 당신께 말해줬나요? 라고 물었습니다. “주님께서요. 하고 내가 말했습니다. ”주님은 제게 당신이 부인을 데리고 신유집회에 데리고 갔었고 그 복음을 전하는 자가 그녀를 귀신들림으로부터 구해내지 못하는 것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영으로 당신이 그녀를 데리고 어떤 예언자의 집회에 데리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도 역시 그녀를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당신은 그 사람에게 화를 냈습니다. 나도 역시 그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귀신들로부터 그녀를 구원시킬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네게 화를 낼 수 있지요. 이것이 바로 제가 그녀에게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자 이제 제가 왜 그 분들이 그녀를 구출하지 못했는지 나도 그녀를 자유케 못하는지 이유를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그녀가 이 음성들을 듣기 원하는 한 그녀는 그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녀는 미친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지금 내가 말하는 모든 것을 잘 듣고 있습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자, 자매님, 당신이 이 음성을 더 이상 듣기를 원하지 않게 되거든 제게 오십시오, 그러면 제가 자매님을 도와드릴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글쎄요, 나는 이 음성 듣기를 원합니다.”라고 그녀가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그럴 술 알았습니다.”라고 내가 말했습니다.
어떤 이는 “어쩌면 그녀는 자기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라고 말할 것입니다. 만일 그녀가 몰랐다면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나도 역시 그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사역에 관하여 말씀하기를 그는 그의 말씀으로 영들을 내쫓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영을 떠난 그의 말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2장을 읽어 보십시오, 바리새인들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서 예수께서 귀신들을 쫓아낸다고 고소하고 있었습니다. (24절) 예수께서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8절)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우리는 말씀으로부터 우리가 영적 권세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는 권세를 행사하여 일을 할 때는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바라며 의지해야만 합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만일 마귀가 나를 공격하더라도 나는 마귀 위의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자신의 삶에 대하여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마귀에게 지금 즉시 나의 집을 떠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또한 사람이 내 앞에 있는 한, 상황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텍사스포트워스에서 온 친구 목사와 제가 설교를 하게 되어 있어 캘리포니아의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그 친구 목사님은 수년 동안 당뇨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 그는 매일 아침 그의 몸에 얼마의 인슐린이 필요한가를 알아서 주사 맞기 위해 그의 소변을 검사해야 했습니다. 그에게 믿음 공부를 시키려고 애쓰면서 나는 그의 목사관에서 차를 빼고 나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나와 함께 있는 한 당뇨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입니다.
그가 나와 함께 있고 그가 나의 거처에 함께 있는 한 나는 그의 질병을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나로부터 멀리 떠나버리면 나는 통제할 수 있도록 그를 훈련 시켜야만 했습니다. 그는 나를 못 믿겠다는 듯이 쳐다보았지만 그가 나와 함께 있었던 거의 2주 동안 그는 파이나 케이크 들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당뇨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당뇨가 나올 것을 나는 알고 있다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스스로 소변 검사를 해 본 후에 그가 “내 평생에 이런 일은 처음이군.” 하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그가 내게 말하기를 그가 집에 돌아간 지 사흘 후에야 당뇨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하였습니다.
보십시오. 나는 그 병에 대한 권세를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비록 내가 안 보이는 세력에 대하여는 통제할 힘을 가졌지만 그 목사님의 의지에 대하여는 힘이 없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나와 함께 있는 동안 내가 안 보이는 세력에 대해 힘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도 똑같은 권세를 행사할 수 있다고 확신을 시켜주려고 노력했지만 그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는 당뇨병이 다시 재발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고 또 기대했던 대로 재발했습니다.
그 목사님이 영적 권위를 마침내 이해하게 되기까지는 그 후로도 5년이 걸렸습니다. 우리 목사님들 중 어떤 분들은 매우 느림보입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나는 그들을 도와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살면서 도와줄 그런 시간이 없습니다.
마귀의 힘 부수기
나는 과거 15년 동안 그를 구원하려고 노력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 입장에 서서 믿는 자로서의 권세를 행사했을 때 이 권세는 역사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을 듣고 그렇게 역사하는지 한번 시도해 보겠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는 역사하지 않을 것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한 번 시도해 본 것이 아니라, 그것을 수행했기 때문입니다.(I hadn't tried it - I had done it ).
가끔 믿는 사람들이 그것이 다른 사람 누군가에게는 역사하였기 때문에 그들도 한번 어떤 일을 시도해 보겠노라고 말합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스스로를 권세에 대한 가르침으로 옷 입으면 이 권세의 행사는 그들에게도 역사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심령 가운데 실재로 굳건히 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시도해 본다면 마귀는 그들을 거뜬히 패배시켜 버릴 것입니다.
당신은 오직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하고 그 기초 위에서 행동할 때에만 마귀와 싸움에서 마귀를 무찌를 수 있습니다.
왜 사름들은 자신의 병 고침을 잃어버리는가?
1947~1958년, 나는 신유 부흥의 역사가 당시의 유명한 복음 전도자들의 집회에서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갔을 때에는 마귀가 거짓 증상을 가지고 그들을 따라 옵니다. 믿음의 기초가 없는 사람들은 마귀가 똑 같은 병을 다시 그들에게 가져 줍니다.
이것이 바로 악령들이나 질병 등 많은 것들로부터 구원을 받은 사람들을 당신이 다시 보게 될 때는 과거 고침 받지 못한 상태로 되돌아 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마도 그들은 처음부터 깨끗이 치료받은 게 아니었던 모양이야” 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가 치료받지 않고서 어떻게 한 번도 전에 걸어 본 적이 없었던 앉은뱅이가 걸을 수 있었겠습니까? 만일 그것이 치유가 아니었다면 그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전에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사람이 어떻게 볼 수가 있었겠습니까? 어떻게 과거에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사람이 들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들은 집에 갈 때 까지는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2~3주에 그들의 병 고침 받음은 사라져 버립니다. 왜 그들은 놓치게 될까요? 그것은 그들이 그들의 권세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것을 어떻게 계속 유지할 것인지 알지 못하고 스스로 권세를 행사해 보지 않았습니다. 혹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하게 되면 잘못된 것을 말해 버리고 맙니다.
나는 완전히 치료받은 소아마비 환자를 보았는데, 한 열흘 후에 그 병 고침 받음을 놓쳐버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관절염으로 3년 동안 완전히 침대에만 누워서 살아왔던 한 여성을 기억합니다. 그녀는 침대 위에 널빤지처럼 빳빳하게 눕혀져 있었습니다. 그녀는 즉시 고침을 받고 얼마쯤 걸었습니다. 그녀의 의사는 그녀의 몸서 관절염의 아무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6주 후에 그녀는 다시 널빤지처럼 빳빳해 지고 말았습니다,
왜 치유를 놓쳤을 까요? 어떤 사람들은 “그들은 최면술을 걸었다”고 말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아닙니다. 사람들은 성령의 은사가 역사하는 곳에서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치유는 쉽게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이 자기 스스로 되돌아 갈 때에 실제로 그들 자신에게만 의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믿는 자로서 그들의 권리와 특권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 받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스스로 마귀 · 질병 · 환경 등에 대하여 권세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귀신들 쫓아내기
성경은 병 고침과 귀신 쫓아내기를 구별하고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의 육체적 상태는 기도나 안수를 해도 효과를 보지 못할 때가 있는데 이는 악령들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뉴올리언스에 사는 한 침례교도 여인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그녀는 정신병에 걸려서 정신병자 수용소에 구류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성령 세례를 받은 내 친구 침례교 목사님이 그녀를 위해 기도해 주려고 방문했습니다. 그는 그녀에게서 아홉 귀신을 쫓아내고 그녀는 즉시 강건해졌습니다.
그녀의 경우를 잘 알고 있는 한 대학 교수가 이것을 그의 강의 중에 예로 들어 사용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그에게 너무나도 깊은 인상을 남겨 놓게 되었으므로 그 교수는 이 침례교 목사를 초청하여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결과 그 교수의 부인이 성령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교수는 성령 충만 받기를 간구했을 뿐만 아니라, 그는 귀신들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강의 시간에 말하였습니다.
눌림과 사로잡힘
이 경우 병 고침 받는 경우가 아닙니다. 그를 위해 기도하면서 나는 그에게 설명하였습니다. 이 사람의 몸은 귀신에 의해 사로잡힌 것이 아니라, 귀신에 눌림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예를 들 수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11년 전에 지어진 집에서 살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 집은 개미가 있다고 당신에게 말했습니다. 이 말은 당신이 당신 안에 개미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당신의 몸은 당신이 살고 있는 집입니다. 만일 당신의 집에 있는 개미를 없애는 방법을 알고, 당신의 몸에 귀신들을 없애는 방법을 알고 갔다면, 당신이 바른 주의만 한다면 개미나 귀신들이 거기 거하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자기가 사는 지역의 자선병원에서 시간을 내어 봉사하고 있는 성령 충만한 정신과 의사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한 정신병원에서 그는 3년간이나 말을 하지 않는 한 남자 환자를 실험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마치 동상처럼 아무 표정도 없이 그를 쳐다보았습니다. 그 의사는 매일 그에게 손을 얹고서 “만일 여기에 악령이 있으면, 내가 악령들을 꾸짖고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떠나갈 것을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령 한다”라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만일 다른 의사들만 없었다면 이 의사는 환자에게 손을 얹고 매일 5분씩 방언으로 큰 소리 내어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사들이 주위에 있을 때에는 그 의사들이 그가 하는 바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므로 그는 지혜를 사용하여 속으로만 기도하였습니다.
열흘이 못 되어서 그 환자는 말하기 시작했고 30일이 못 되어서 그는 고침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의사는 물론 다른 환자들을 도와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높이시고 하나님의 영은 기도할 바를 알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바로 우리 기도의 주체입니다.
귀신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 Satan, Demons, and Demon Possession 」 을 보십시오).
하나님 말씀과 성령이 없다면 우린 속수무책입니다. 성령 없이 단지 말씀의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또 말씀 없이 성령의 사람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령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려고 합니다. 당신은 둘 다 가져 야 합니다. 성령과 말씀은 일치합니다.
당신은 모든 병 고침의 경우에 영을 다룰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다루어야 한다면 주님이 당신께 보여 주실 것입니다. 내가 일기로는 하나님은 지적이 존재이시고 나도 지적 존재이므로 하나님께서는 만일 악한 영이 존재한다면 내게 말씀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 분이 말씀하신 만큼만 가고 말씀하시지 않으면 가지 않습니다. 나는 그 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면 나는 악령을 다루려고 힘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내가 어떤 경우에는 치료만 섬길 것을 인도 받지만 또 같아 보이는 사례임에도 영을 다루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왜 그런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렇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 뿐입니다.
당신은 한 경우를 다른 경우로 미루어 판단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를 도울 수 없는 사람들은 도움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끔 그런 사람들은 당신이 당신의 믿음으로 치유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미 아는 사람들은, 즉 치유에 대해 영적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의 빛 아래서 스스로 걸어야만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영적으로 깨어 있습니다. 당신이 영적으로 더 많이 알수록
더 많은 것이 요구됩니다. 당신은 당신의 몸과 마음이 압제로부터 자유 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과 함께 있는 한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당신이 영적 권세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영적 권세를 행사하는 법을 배우게 되면 이것은 당신 집 안에서도 물론 역사할 것입니다.
나는 구원받지 못한 남편들이 집에 와서는 다투고 싸울 때 그들의 영적 권세를 행사했던 여자들에 관하여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여자 성도는 그 상황 뒤에 있는 악령을 조용히 말없이 꾸짖는 법을 배워서 그 악령들에 대한 권세를 행사하였으며 상황은 변화되었습니다.
나는 몇 년 전에 나의 친척 몇 사람이 매우 분노하고 있을 때 이 방법으로 권세를 행사했습니다. 나는 단지 그 상황에 맞게 권세를 취했을 뿐인데, 내가 그렇게 하였을 때 그들은 즉시 알아차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놀랬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상황은 즉시 무마되었습니다. 나는 물론 그들의 의지에 대해서 권세를 행사한 것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행한 그 행위를 하게 한 영에 대한 권세를 행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한번은 그의 제자들에게 그가 많은 고통을 받고 죽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반대했습니다. 예수께서 즉시 그를 꾸짖으시며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마16;23)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사탄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베드로가 의심 · 불신 · 마귀의 편에 서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가끔 그리스도인들은 무의식 적으로 적에게 양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탄에 대해 권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두려움, 즉 우리의 삶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서도 권세를 취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에 관한 두려움에 대해서까지 항상 권세를 취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마귀에 대항 할 줄은 모르지만 나와 함께 있는 한 두려움에 대해 통제할 수가 있었습니다.
디모데후서 1;7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두려움을 영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에 주의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과 사랑의 영과 근신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내가 젊은 침례교 목사였을 때에도 나는 언제나 두려움과 의심에 대해서 권세를 취했습니다. 내가 의심하도록 유혹을 받게 될 때에 나는 “의심아! 나는 예수 이름으로 내가 너를 대적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두려워하도록 유혹을 받을 때에는 나는 “두려움아! 예수이름으로 내가 너를 대적 한다”라고 말합니다.
당신도 이렇게 할 때 의심과 두려움이 당신을 떠나버릴 것입니다. 우리는 심지어 진리를 거스리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텍사스의 한 경찰관의 옆집에 사는 순복음파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이 경찰관은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매우 신랄하게 반대하는 교파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경찰관에게 자기 교회를 방분하도록 허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경찰관은 농담조로 목사님에게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경찰관이 그에게 말하기를 자기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이 방언을 주제로 말씀할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가지로 결정하였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은 그의 설교에서 성경에 근거한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들 가운데 있었다고 하는 그가 들은 많은 다른 것들에 대해서만 말했습니다. 이것을 듣고 있던 이 순복음파 목사님은 이 상황에 대해서 권세를 취하셨습니다. 설교를 하던 그 목사님은 갑자기 말을 중단하더니 얼굴이 창백해지고 그의 설교를 마치지도 못한 채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 경찰관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그는 그 순복음파 목사님께 가서 악수를 하고는 그를 부둥켜안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붙잡으셔서 기쁩니다. 그 목사님은 그보다는 더 양식이 있었어야 했는데...“라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날 저녁 그 설교자는 그가 많이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 말한 것을 사과하였습니다. 그는 마치 하나님께서 자신을 체포하시는 것 같았다고 말했으며 우리가 어떤 일들에 대하여 많이 알고 있지 못할 때에는 그냥 내버려두는 편이 훨씬 낫다고 말했습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야고보서 4;7에는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마귀를 능가하는 그 권세는 우리의 것입니다.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만일 우리가 마귀를 대적하면 그는 우리에게서 도망갈 것입니다.
성경은 “어떤 사람을 찾아서 그가 너를 위해 마귀를 쫓아 달라고 하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중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게으르게 주저앉아서 우리가 바로 마귀를 대적해야할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무엇인가 해 주기를 기다리고만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그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가 우리의 마땅히 해야 될 일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 사람들은 언제나 영적인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들 중 어떤 이들은 이제 충분히 성장하여서 이영적인 어린아이들을 보살펴 주어야지 목사님께 모든 것을 다하도록 떠맡겨서는 안 됩니다. 어떤 상황이란 것은 우리가 허용하였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18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흠정역의 말씀인데, 제가 전에 읽었던 다른 번역본에는 이렇게 되어 있는데 저는 이 번역을 좋아합니다. “무엇이든지 여러분이 땅 위에서 허락되기를 거절하는 것들은 하늘에서도 허락되기가 거절될 것입니다”
당신의 권세를 행사하십시오.
이 책은 점자책으로 만들기 위해 타이핑 된것 입니다.
제 7 장
우리의 전재
무기들
믿는 자는 영적 무장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6;10은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무장을 하고 영적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표시가납니다. 마귀는 당신이 마귀 위의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지식을 갖지 못하게 하려고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합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서 다른 어떤 문제들보다도 더 열심히 싸우려 할 것입니다.
당신이
권세를 알게 되고 나면 마귀는 당신을 반대하여 이 권세를 당신으로부터 빼앗아 가려고 할 것입니다. 반드시 시험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패배할
것입니다. 마귀는 당신이 손을 들고서 ‘믿는 자의 권세는 내게 역사하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내가 이 주제에
대해서 설교를 하고 있는 어떤 모임에서 한 남자가 내게 와서 믿는 자의 권세가 자기에게는 역사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은 거짓말쟁이군요” 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실제로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보다는 차라리 죽겠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지 않는다면 내가 역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실패할지 몰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 것을 믿습니다.
마귀는 당신이 그의 영역을 간섭하지 못하도록 저항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공중의 권세들에게 자신의 권세를 행사하고
있으며, 그는 계속 그렇게 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영적 권세를 행사함으로 마귀의 나라를 간섭하게 될 때, 그는 자기의 모든 힘을
집중하여 강력하고 처절한 전쟁으로 당신을 대적할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성공적으로 저항한다면 그의 다음번 공격은
당신의 마음과 몸과 가족과 상황에 대한 것입니다. 당신은 이런 공격을 예상하고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공격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의 특권 있는 영적 위치는 위험한 공격의 대상이란 것입니다. (어떤 진리도 믿는 자의 권세가 당하는 그런
어려움에 부딪히지는 않습니다).
나는 마귀가 할 수 있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를 정복시켜버리려고 하던 착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진리들을 가르쳤거나 배웠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이 말대로 행동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여러 번 그들의 몸은
정복당했습니다.
어떻게 지지 않고 건재할 수
있을까?
그러나 사람들이 그들을 위하여 제공된 영적 무기들을 잘 이용했다면 적은
그들을 패배시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나는 마귀로부터 나온 어떤 것도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와 사람들을 무찌를 수 있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믿는 자는 늘 무장이 되ㅏ어 있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바울을 통하여 믿는 자들의 눈이 열려 그들의 안전을 위하여 준비된 이
온전한 하나님의 준비하심을 알게 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영적 무기는 에베소서 6장에 그 요점이 적혀있습니다.
엡
6;10~17
종말로 너희가 주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히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 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이 무장의 다른 각 부분들은 믿는 자가
유지해야만 하는 영적 태도를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전신갑주를 입음으로써 믿는 자는 보호받고 그의 권세 있는 사역에 방해를 받지 않게
됩니다. 그가 오직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그의 무장이 최고의 상태로 확실히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 이 무장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알아봅시다.
첫째는 존 맥밀란이 가르쳤던 것처럼, 진리의 허리띠가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의 분명한 이해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군인의 허리띠처럼 허리띠는 나머지 모든 장비를 그 자리에 붙들어 두는 역할을 합니다.
둘째는 의의
흉배입니다. 여기에는 두 개의 적용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의이시고 우리는 예수님을 먼저 입어야 합니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종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셋째는 우리의 발은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히 선포하는 사역을 말합니다.
넷째는 믿음의 방패입니다. 방패는 몸 전체를 감싸는 것입니다. 이것은 적의 어떤 힘도 침투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보혈아래
있는 완전한 안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섯째는 구원의 투구로서 이는 데살로니가전서 5;8의 구원의 소망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소망은 진리를 떠나고 있는 요즈음 시대에 우리의 머리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투구입니다.
여섯째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공격적으로 사용되어져야 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른 무기는 주로 방어용이지만 검, 즉 하나님의
말씀은 적극적인 무기입니다.
에베소서 6;18은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라고 하였습니다.
당신은 이제 그동안 기도로 싸웠을 때 여러 번 역사 하지
않았는지 이유를 알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무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완전 무장을 했을 때만이 전쟁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영으로
기도하는 것이 일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사는 이야기 > ♪♪책을 읽고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마음속의 피터팬 (0) | 2006.06.03 |
---|---|
왜 방언을 말 하는가? (0) | 2006.06.03 |
믿는자의 권세(5,6)--Kenneth E. Hagin 지음 김 진호 옮김 (0) | 2006.06.03 |
행복한 왕자--동화 (0) | 2006.06.03 |
기적의 빵 -- 요셉의 이야기(펌)탈무드 (0) | 2006.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