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방언을 말 하는가?
(why tongues?)
저자 :- 케네스 해긴. 분당 예닮교회 김 진 호 목사 펴냄
목차
역자 서문
제 1부 성령을 받는 성경적 방법
제2부 모든 믿는 자가 방언을 말해야 하는10가지 이유들
역자 서문
지금부터 벌써 17년 전 미국 유학을 하며 영적인 갈급함이 점점 더해갈 무렵, 어느 날 도서관 앞에서 한 무리의 찬양하는 대학생들을 만나 그들이 초청하는 청년 대학부(college and career) 예배에 나가면서 저의 신앙생활에 새로운 세계가 열렸습니다.
그들은 내가 거듭난 신자(a born again Christian) 인 것을 확인한 다음 내게 성령 세례를 받았는지 물었습니다. 성령 세례가 무엇인지도 정확히 모르는 사람에게 성령 세례를 받고 싶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하니까 그 자리에 꿇어 앉게 하고는 여럿이 손을 얹고 소위 방언 기도를 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방언 기도를 오랫동안 사모하여 유학을 가기 수 년 전에도 오산리 금식 기도원에 가서 사흘 금식까지 했었고 중동에서 건설 회사에 근무할 때는 저녁 늦은 시간에 모래밭에 혼자 나가 무릎을 꿇고 금식하고 기도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수 기도를 받기도 하고 나름대로 금식도하고 기도하며 구했지만 다른 사람이 다 하는 방언 기도를 자신만 못한다는 사실은 저를 부끄럽게도 하였고 ‘무엇이 부족해서 나는 안 되는가’ 하는 자격지심이 들게도 하였고 심지어는 하나님이 나에게는 왜 안 주실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로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도서관 앞에서 만난 학생을 따라 미국 교회에 처음 나간 그날 별로 방언을 사모하지도 않고 방언이 무언인지도 모르던 아내가 곧 성령 충만을 받더니 방언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방언을 사모해도 받지 못하던 제게 아내의 방언 기도는 부러움을 더해 주었고 나를 그 교회로 인도했던 친구는 제 손에 빨간 색의 작은 책자를 쥐어주고 꼭 읽고 다음 번 모임에 오라고 하였습니다.
다음 주 예배 시간을 기다리기도 전에 주말에 그 친구들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는데 그날 참석한 한국 유학생 친구들 중에 성령 충만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은 모두 방언 기도를 선물로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미국 교회 친구들의 지하 자취방에서 밤늦게 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방언을 들으며 이렇게 쉽게 되는 것을 왜 이렇게 고생했나 하고 지난 갈등의 세월이 후회될 정도였습니다.
이 작은 책의 위력은 바로 말씀의 위력이며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하게 믿음으로 성령 세례를 받고 방언 기도를 통해 기도뿐만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사람이 능력으로 강건케 되는 것을 이 책을 읽는 모든 성도들이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작은 책을 거듭났으나 아직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한 성도들에게 선물로 주고 기도해 줌으로 이 축복을 함께 나누는 일이 쉽게 일어날 것을 믿으며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과 관계없이 교회의 전통을 따랄 “성령 받아라. 불 받아라” 하고 외치는 옛날 부흥회에도 예수 믿자마자 참석 했었지만 왜 이 쉬운 성령 충만 받는 일을 그리도 어려운 우리의 노력으로 만들어 놓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무 뿌리를 뽑으라는 등 우리의 열심에 호소하던 잘못된 가르침이나 조금 열심을 내다가 안 되니까 낙심하고 괴로워했던 것을 생각하면서 참으로 성경을 바로 읽고 믿게 하는 책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주의와 장로교회가 한국의 영적 분위기를 주도하고는 있지만 이제는 오순절 운동도 이 땅에 널리 소개되었고 또한 여러 가지 이 방면의 좋은 전문 서적들이 출판되어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순복음교회의 성도가 아니라도 많은 사람들이 방언 기도의 유익을 알고 누리고 있지만, 아직도 저와 비슷하게 이에 관하여 성경적 가르침을 받고 믿음으로 받을 수 있는 성령 충만을 스스로의 노력과 열심으로 받으려고 고생하여 낙심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생각하고 이번에 안식년을 맞아 “레마의 성경 훈련소” 에서 공부하고 돌아오면서 판권을 얻어 정식으로 이 작은 책자를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해긴 목사님의 단순하고 믿음을 주는 명쾌한 가르침을 담은 소책자와 다른 책들을 이번에 “믿음의 말씀사”에서 여러 권 펴내게 되었는데 한 권 한 권 읽을 때 마다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믿음 생활의 진보가 있을 것을 확신하며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고 읽혀지고 영적 축복을 나누는 책들이 되기를 기도 합니다.
안식년 후 첫 가을을 맞으면서 2000년 9월
분당 예닮교회 김 진 호 목사
제 1 부
성령을 받는 성경적 방법
신약 성경의 믿는 자들이 성령으로 충만 받는 것은 오늘날에도 우리의 모형이 되어야만 합니다. 나는 우리가 사도행전을 보고 그들은 어떻게 했는지 알아보고, 사람들을 성령 충만 받게 하는데 그들의 예를 따를 것을 주장합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 예수님께서 위로 올라가시기 바로 전에 우리는 이 위대한 장면을 봅니다.
행1; 4-5
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그리고 난 다음날 오순절 날 장면입니다.
행2;14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
오래 전에 한 젊은 기성 교단 소속 목사로서 신약 성경을 읽을 때 성령께서 나를 깨우쳐 주셔서 내가 만일 그들이 받은 똑같은 성령을 받는다면 나도 그들이 가졌던 똑 같은 처음 표적 즉, 성경의 증거(the Bible evidence)인 다른 방언으로 말하게 되는 것(speaking with tongues)을 갖게 될 것이라고 확신 합니다. 나는 어떤 다른 것으로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방언을 말하는 것이 성령님은 아닙니다. 또한 성령님은 방언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둘은 항상 함께 있습니다.
사마리아에서 믿는 자들이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일어난 일들은 수 년 동안에 걸쳐 일어났던 일들입니다. 오순절 날이 지난 8년 후에 우리는 빌립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들고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행 8;5-8,12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이 성경 구절들은 구원 받은 후에도 성령을 받는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나는 구원 받을 때 성령을 받았다고 _ 어떤 의미로 이것은 맞는 말 입니다._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속한 교파에서는 구원을 받을 때 이미 있는 성령을 다 받았다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16;15-16) 이 사마리아인들은 믿었고 세례를 받았습니다(행8;12). 그들은 구원받은 사람들 입니까? 예수님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새로운 탄생(the new bitch)은 성령님의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은 성령을 받았다고 불려진 것이 아니라, 그것은 영생을 받는 것, 거듭나는 것(being bo구-again)이라 불리었습니다. 구원받은 다음에 있는 경험으로써 성령을 받는다. 혹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다는 것아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에서 빌립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들었을 때,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어 새로운 회심 자들이 성령을 받도록 그들에게 손을 얹었습니다.
행8;14-17
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15,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이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일러라
17,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방언하는 것을 반대하는 어떤 사람들은 사마리아인들이 성령을 받았을 때 방언 말한 것을 성경에서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이 방언을 말하지 않았다고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교회 역사를 공부한 사람들은 초대교회 교부들도 사마리아에서 그들이 방언을 말했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행8;18
18,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말씀은 “ 시몬이 보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성령을 볼 수 없습니다. 성령은 영이므로 우리 눈에 보여 질 수 없습니다. 그들이 성령 받은 것을 시몬이 알 수 있었던 어떤 육체적으로 보이는 표적(some Physical sign), 즉 시몬의 감각에 인지되는 어떤 것이 있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모든 증거가 그 나타난 표적이 방언 말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이 고넬료의 집 안에서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오순절이 지난 지 약 10년 후에 말씀은 복음을 들고 고넬료의 집으로 가고 있는 베드로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행 10;44-46
44,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 이러라
이 이야기 전부를 읽어보면 우리는 어떻게 한 천사가 고넬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욥바에 사람을 보내어 어떤 사람의 집에 있는 시몬 베드로를 찾으라고 말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너와 네 온 집이 구원을 받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행11;14) 고넬료나 그의 집안사람들 모두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단지 유대교로의 개종자(jewish proselytes)였습니다. 사람은 복음을 듣지 않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관하여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베드로가 설교를 하고 있을 때 그들은 거기 서 있는 중에 믿게 되었고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령을 받았고 베드로가 말씀을 마치기도 전에 방언을 말했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있었던 사람들에게 이방인들도 성령을 받았다는 것을 확신시켜 준 것이 방언을 말하는 것이었음을 주의 하십시오. 유대인 믿는 자들은 성령이 이방인들에게 부어짐을 인하여 놀랐습니다.
믿는 자들이 에베소에서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오순절 이후 20년이 지나서 바울은 에베소로 여행을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믿는 자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성령님(the Person of the Holy Spirit)을 소개하였습니다.
행 19;1-3.6
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3,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 로라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우리가 위의 구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에베소의 믿는 자들은 성령에 관하여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그들에게 손을 얹었을 때 성령이 그들 위에 오셨고 그들은 방언을 말했습니다. 그들 모두가-기다리거나 찬양을 하거나 지체함이 없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고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말을 주는 대로(as the Spirit them utterance) 다른 방언으로 말을 했습니다.
바울의 성령 충만
이 사람들에게 손을 얹었던 바울은 이전에는 다소의 사울로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가 성령 받는 경험에 대한 이야기는 사도행전 9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행9;10-12,17
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 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12,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후일에 바울로 알려진 사울은 즉시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는 지체하거나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순간적으로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방언을 말했다고는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라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여기에는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는 것이 사실 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방언을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함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14;18)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바울도 그가 성령을 받기 전에는 방언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언제부터 방언을 말하게 되었는지 알아내는 것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와 같이 성령을 받았을 때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방언은 성령 받는 것과 함께 따라오기 때문 입니다.
방언을 말하는 것은 성령이 내 안에 사심에 대한 증거요, 최초의 초자연적인 표적입니다. 방언을 말하는 것이 이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나는 나의 삶을 통하여 내가 방언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을 많이 할수록 내가 가진 더 많은 성령의 은사들이 나타남을 발견했습니다. 방언을 말하는 것은 나머지 성령의 은사들로 인도하는 문 입니다.
제 2 부
모든 믿는 자가 말하는
방언을 말해야 하는 10가지 이유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 막16;17
사도 바울은 방언 기도에 관하여 많이 썼을 뿐 아니라 방언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가 설교한 내용대로 살았음이 명백한 것은 그는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많이 말함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4;18)고 한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나도 늘 규칙적으로 방언을 말함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모든 믿는 자들이 방언을 말하는 것이 매일 사는 삶 속에서 능력의 원천이 되며 축복인 것을 알기 원합니다.
제2부를 쓴 목적은 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방언을 말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며, 그리스도인들이 매일 성령의 능력으로 공급되어지는지 모든 축복을 알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
방언은 첫 번째 표적(the Initial Sing)입니다
행2;4
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우리가 방언을 말한다고 가르칩니다. 방언은 성령 세례를 받은 첫 번째 증거요 표적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방언을 발하는 첫 번째 이유는 방언이 성령께서 내주하시고 계시는 첫 번째 초자연적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10장에서, 우리는 유대사람들이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갔을 때, 성령이 이방인들에게 부어짐을 보고 놀란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유대인들은 고넬료의 가족이 성령을 받았는지 알았을까요? 그들은 그 축복이 오직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들이 다른 방언으로 말하며 하나님을 높임을 들음일러라.” (행10;46)방언은 이방인들도 같은 선물을 받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초자연적 표적 이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 - 방언은
영적으로 우리를 세워줍니다(Spiritual edification)
고전14;4
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고린도 교회로 보낸 편지에, 바울은 믿는 자들이 영적으로 강건해 지며 든든히 세워지기 위해 방언을 예배에서나 개인의 기도 생활에 계속하라고 권면 합니다. 희랍어 학자들은 우리 구어 중에는 “강건하게 세운다(edify)."보다 더 원어에 가까운 말이 현대어 구어 중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 단어는 “영적으로 충전하다(charge)" 입니다. 마치 배터리(battery)"를 충전하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구절을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를 강건케 하며(edify), 충전하며(charge), 자기 자신을 세우며(build)" 라고 다시 쓸 수 있습니다.
이 놀랍고 초자연적인 영적 충전(spiritual edification)은 정신이나 육체의 충전이 아님을 주목하십시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이면 누구나의 것입니다.
고전14;2
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웨이마우스 번역(Warmouth's)에 이 구절은 “그는 하나님의 비밀(divine secrets)을 말한다.” 고 썼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하나님에 의한(divine), 초자연적인 그 분과의 대화 수단입니다.
고전 14; 14
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내 영이 기도한다.”는 말을 주의해 보십시오. 확대 번역 성경은 ”내 영(내 안에 있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이 기도한다. “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할 때, 우리의 영은 직접적으로 영이신 하나님과 접촉합니다. 우리는 신령하게 초자연적인 수단으로 하나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방언을 말하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으리오?” 라고 사람들이 묻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방언이 유익하다“고 말하면 유익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강건케 한다.“고 말하면 강건케 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 말씀이 ”하나님과 초자연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하면 하나님과 초자연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수단인 것입니다.”하나님 말씀이 모든 믿는 자가 방언을 말해야 한다. “고 하면 모든 믿는 자는 방언을 말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소수의 사람만 방언을 말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라고 했습니다. ‘믿는 자들’은 복수입니다. 그것은 믿는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표적 중의 하나가 ”그들은 새 방언으로 말하며…….(막16;17)입니다.
세 번째 이유--- 방언은 우리에게 성령님이
우리 안에 살고 계심을 상기시켜 줍니다.
요14;16-17
16, 내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 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대영제국의 하나님의 성회(Assembly of God) 총회장(general superintendent)을 했고 오순절 성경학교를 온 세계에 세웠던 하워드 카터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 성령 충만의 첫 번째 증거일 뿐 아니라, 그 사람이 방언을 처음 한 이후의 인생에도 계속적으로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무엇을 위해서일까요?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 입니다. 방언 기도는 영원이 마르지 않고 흐르는 강줄기와 같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영적 생활을 풍요롭게 할 것입니다.
방언으로 기도하고 예배하는 것을 계속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인지하도록 우리를 도와줍니다. 만일 내가 매일 성령님이 내 안에 살고 계심을 인지할 수 있다면 내가 매일 살아가는 삶에도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12살 된 어떤 목사님의 딸이 너무 화가 나서 엄마에게 버릇없고 증오가 섞인 말을 했습니다. 그들을 방문하고 있던 순회 전도자(visiter evangelist)가 그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그 소녀가 얼굴을 들고 그 전도자를 바라보며 그 전도자가 울화(temper)를 터뜨리게 된 것의 증인임을 알았을 때 그녀는 당황하여서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목사님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을 보시게 되어서 정말 미안해요”라고 그녀는 울었습니다.
“얘야, 네가 하는 것을 보고 들은 나보다 더 크신 분이 있단다. 너 그리스도인이지?”
“네.”
“성령 충만함을 받은 적 있니?”
“네.”
“그렇다면, 네 안에는 성령님이 계셔, 그 분이 네가 말한 것과 행동한 것을 아신단다. 그러나 네가 회개하면 주님께서 너를 용서해 주실 거야.”
그들은 함께 기도했고, 그녀는 주님께 용서를 빌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그녀는 방언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들이 기도를 마쳤을 때, 그 전도자가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네 울화를 참을 수 있는 비밀이 한 가지 있는데, 네가 매일 방언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을 경배한다면, 너는 성령께서 네 안에 계심을 의식하게 될 거야. 네가 성령님이 네 안에 계심을 기억한다면 더 이상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거야”
몇 년 후에 전도자가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그 교회를 방문했을 때 그 소녀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목사님이 하신 말씀을 결코 잊지 않았어요.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매일 방언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을 경배했는데, 전처럼 화를 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불행이도 우리 모두는 성령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도 몹시 화를 내며, 해서는 안 될 말을 하며 행동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성령 안에서 살아야 할 바대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분의 임재를 의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쉽게 초조해지고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교통하는데 시간을 보낸다면 우리는 우리 속에 계시는 그 분의 임재를 인지하게 됩니다.
네 번째 이유-- 방언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온전한 뜻(God's perfect Will)을 따라 기도하게 해 줍니다.
롬8;26-27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 라.
방언 기도는 우리기도 가운데 이기적인 것들을 제거 해 줍니다. 만일 내가 내 맘대로 내 생각대로 기도한다면 그것은 성경적인 기도가 아닐 것이고 이기적인 것입니다. 나이 많은 농부가 “하나님, 저를 축복해 주시고 제 아내와 제 아들 존과 그의 아내 이렇게 우리 네 식구만 축복해 주세요.” 라고 기도하듯이 우리 기도도 종종 이런 식이 되기 쉽습니다.
위에서 인용한 성경 구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어떻게 기도할 줄을 모른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할지 이미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 주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것이 바른 기도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기도할 줄 안다고 해서 그것이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 아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바울은 “……. 내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친히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중보 하신다.”고 말했습니다.
P, C넬슨은 희랍어 문자 그대로 “성령께서 우리가 정확히 말할 수 없는 신음으로 우리를 위해서 중보 하신다.”라고 말합니다.(정확히 말한다는 것은 우리의 사용하는 언어를 의미합니다.) 그는 희랍어에서 기도할 때 우리의 입술을 통해 신음이 나오는 것뿐만 아니라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계속해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고린도전서 14장 14절에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내 영이 기도하거니와…….”라고 말했고, 확대 번역 성경은 ‘내 영(내 안에 계신 성령으로 말미암아)이 기도한다. “라고 표현했습니다.
당신이 방언으로 기도할 때, 그것은 단신 안에 있는 성령으로 말미암아(인도르 받아) 당신의 영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말을 인도하시는 것은 성령님이시고 당신은 당신의 영으로 그것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당신은 말하고 그 분은 발음을 인도해 주십니다. 이런 방식으로 성령님께서 당신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할 바대로 기도하게 도와줍니다.
이것은 성령님께서 당신과 분리되어서 무엇인가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이 당신과 분리되어서 탄식하며 방언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 탄식은 당신의 내부로부터 당신의 입술을 통해 빠져 나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돕는 자로, 또 중보자로 보내지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의 기도 생활을 책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돕기 위해 와 계십니다.
방언을 말하는 것은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으로 인도 되어진 기도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도 속에서 이기적인 것들을 줄여줍니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이 그들 마음대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온전한 뜻도 아니고 그들을 위해 최고의 좋은 것도 아닌 것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것들을 얻기도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것이 아니고 온전한 뜻이 아닌 어떤 것들을 원한다면 하나님은 종종 그것을 허락하십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왕을 주시기를 원치 않으셨지만, 그들이 왕을 원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왕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최고의 뜻은 아니었습니다.
다섯 번째 이유 ― 방언기도는
우리의 믿음을 자극합니다.
유1;20
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모둔 믿는 자가 방언을 말해야 하는 다섯 번째 이유는 방언 기도가 우리의 믿음을 자극하고 하나님께 좀 더 온전하게 의지하는 것을 배우도록 돕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초자연적으로 내가 말하는 것을 지도해 주시고 믿음은 방언을 말함으로 훈련되어져야만 합니다. 나는 다음에 무슨 단어를 말해야 할지 모릅니다. 나는 그것에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이 분야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다른 분야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도와줍니다.
젊은 침례교회 목사로서 내가 담임하던 시골 교회에서 저는 한 감리교인 부부 집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주님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는데 그녀는 위궤양이 있었고 의사는 그것이 암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겁주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돈을 잘 벌지만 대부분의 수입을 병원비로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나는 종종 그들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그녀가 성령 세례를 받은 집회 며칠 뒤, 나는 그들을 방문했고, 그녀가 무엇이든 먹고 싶은 것은 먹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전에 그녀의 위장은 아기 이유식이나 우유조차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저는 성령 세례와 방언뿐만 아니라 병 고침도 받았어요. 저는 이제 아주 건강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런 경우를 수 없이 보았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우리는 성령 세례 받는 것이 병 고침을 받는 것은 아님을 압니다. 어쨌든 방언 기도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가를 배우도록 도와줍니다. 방언기도는 믿음을 자극하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줍니다.
여섯 번째 이유―방언은 우리가
세상 적으로 오염되는 것을 방지합니다.
고전 14;28
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모든 믿는 자들이 방언을 말해야 하는 여섯 번째 이유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 우리를 불경스러움과
우리 직장 주변이나 공공연한 저속한 말과 같은 세상적인 오염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길이기 때문
입니다.
위의 성경 구절을 통해 우리는 방언으로 우리 자신에게 말할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
예배에서는 다릅니다. 바울은 교회 예배와 관련해서 이렇게 말 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방언으로 말하려면 둘이나 다불과(多不過) 셋이서 차서를 따라 하게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지라. 그러나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조용히 하고 자기 자신과 하나님께만 말하게 할지라.”(고전 14:27-28)
만일 우리가 교회 안에서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직장에서도 이와 같이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아무도 방해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이발소에서 외설스러운 농담을 한다면 나는 그냥 거기 앉아서 내 자신과 하나님께 방언으로 말합니다. 차를 타거나 버스나 비행기를 타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과 하나님께 방언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과 하나님께 방언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방언으로 우리 자신과 하나님께 말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오염으로부터 방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곱 번째 이유― 방언 기도는 우리 자신도
알 수 없는 것들을 기도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모든 믿는 자들이 방언을 해야 하는 일곱 번째 이유는 우리가 인식하지도 못하는 것이나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령님께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도와주신다는 것을 미리 압니다.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니…….”(롬8;26) 덧붙이자면, 모든 것을 아시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으로 전혀 알 수 없는 것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일하던 한 영국 선교사가 휴가 중에 선교사 대회(missionary conference)에서 한 여인에게 일기를 쓰고 있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는 쓰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2년 전 저는 한 밤 중에 기도해야겠다는 부담을 가지고 깨어났습니다. 저는 침대에서 나와서 무릎을 꿇기 전부터 방언으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한 시간 가량 방언으로 기도 했는데 마치 내가 씨름(wrestling)을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기도를 끝냈을 때에 저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저는 당신이 짚으로 지은 오두막 집 안에서 원주민들에게 둘러쌓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신은 병이 들었고 그 다음에 죽었습니다. 나는 또 원주민들이 천을 당신 얼굴 위에 덮고는 슬프게 오두막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당신이 오두막에서 나오더니 그들 가운데 섰고 그리고 모든 원주민들은 기뻐했습니다.
그 선교사는 그녀에게 일기장이 있으면 오후에 가져오라고 부탁했습니다. 일기장을 비교해 보며 영국과 아프리카 현지의 시간차를 계산해 보고 그들은 그 여인이 기도의 부담을 가지고 기도하던 시간과 그 선교사가 죽을 것 같은 열병으로 심히 아픈 때가 같은 시간이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의 선교 동역자(partner)는 멀리 있었고, 그 선교사는 홀로 원주민들과 있었습니다. 그녀가 환상에서 본대로 그 선교사는 죽었고 원주민들은 그가 죽은 것을 보고 천을 그의 머리 위에 덮었습니다. 그 후 그는 갑자기 건강하게 나았고 일어났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 때문이었습니다.
1956년, 나와 내 아내가 캘리포니아에 있을 때, 나는 한밤중에 갑작스럽게 잠을 깼습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가 내게 손을 얹은 듯 했습니다. 나는 부리나케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고, 나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습니다. 나는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무슨 일입니까?” “저가 뭔가 잘못된 것을 압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 성령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당신은 내 안에서 뿐 아니라 어느 곳에나 계십니다. 그 일이 무엇이든 내가 기도할 수 있도록 내 입을 인도해 주세요.”
한 시간쯤 방언으로 기도한 후에 나는 웃기 시작하였고 방언으로 찬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기도할 때는 항상 당신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이 나올 때까지 계속 기도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간에 그 문제가 완전히 기도로 끝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는 내가 그날 기도한 것이 실현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응답 받았고 다시 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꿈속에서 루지애나에 있는 내 남동생이 몹시 아픈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앰블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의사가 그의 병실 문을 닫고 나오면서 “그는 죽었습니다.” 라고 내게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의사 선생님, 그는 죽지 않았어요.”라고 내가 말했습니다.
그 의사는 내가 그의 전문적 능력을 믿지 않는다고 무척 화가 나 있었습니다. 그 의사는 내 동생이 확실하게 죽었음을 보게 하려고 나를 데리고 동생의 병실로 들어갔습니다. 내 동생이 죽었음을 확인시키려고 의사가 그 얼굴을 덮었던 시트를 들쳤을 때, 내 동생은 숨을 쉬고 있었고, 그는 눈을 떴습니다. 의사는 놀라서 “당신은 내가 몰랐던 무언가를 알고 있었군요. 정말 그가 살아있군요. 그렇죠?”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내 동생이 건강하게 일어나는 것을 보았고 그리고는 그 꿈은 끝났습니다. 나는 그제야 내가 기도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석
달 후, 내가 동생을 만났을 때 그는 내게 말했습니다. “형이 없었을 때 난 거의 죽었었어.”
나는 그날 밤 동생이 발병을 해서 병원으로
급히 호송된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동생은 누군가 이 사실을 내게 말해주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기도의 부담과 그 꿈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정확히 바로 그대로였어. 40분 동안 의사는 내가 죽은 줄 알았다고 사람들이 얘기해줬어.”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 기도로 대비하는 길입니다. 성령님은 아무튼 모든 것을 아십니다.
여덟 번째 이유― 방언 기도는
영적 새 힘(상쾌함)을 줍니다.
사28 ; 22-12
11,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12,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위의 성경 구절에서 안식과 상쾌함이란 어디서 옵니까? 방언을 말하는 것입니다. 때로 의사들은 치료를 위해 안식하기를 권하지만 나는 세상에서 최고로 안식하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종종 우리가 휴가를 떠났다가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기 전 휴식을 취하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매일 안식함으로 치료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이것이 너희의 안식이요…….이것이 너희의 상쾌함이니…….”
우리는 이 시대 속의 혼란과 당황과 걱정 속에서 영적으로 새롭게 함(상쾌함)이 필요합니다.
아홉 번째 이유 ―
감사 기도로서의 방언
고전14 ;15-17
15,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 하 리라
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무식한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7, 너는 감사를 잘 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바울이 16절에 표현한 ‘알지 못한 처지에 있는 자’란 영적인 것들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만일 당신이 나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감사 기도해주세요”라고 했을 때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했다면 당신은 내가 뭐라고 했는지 모를 것입니다. 당신은 전혀 은혜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런 경우 말아듣는 말로 기도하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합니다.
만일 당신이 방언으로 기도한다면 통변해야만 영적으로 잘 배우지 못한 자가 무슨 기도를 했는지 알 것입니다. 바울은 방언이 가장 완벽한 방법의 감사 기도라 말하고 있음을 주목하십시오. “너는 감사를 매우 잘하였거니와…….”(17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잘 알지 못하는 자가 있는 경우, 바울은 알아듣는 말로 기도해서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그들이 알아듣고, 힘을 얻을 수 있도록 하라고 말했습니다.
열 번째 이유 -
방언 말함은 혀를 제어함이라
약 3;8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방언을 말하려고 당신의 혀를 성령님께 양보하는 것은 당신의 모든 지혜를 하나님께 양보하기 위한 크나 큰 도약입니다. 우리가 가장 제어하기 힘든 지체를 양보할 수 있다면 우리는 다른 지체도 양보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믿는 자들의 개인 삶 속에서 방언을 해야 하는 열 가지 이유들은 먼저 말했지만, 또 한편으로 공중을 위한 방언도 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공중적인 방언
(The Public Side of Tongues)
첫째, 사람들이 성령 세례를 받을 때, 그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합니다.
둘째, 교회에서 공중적인 방언과 통변이 공식 예배에서 말해질 때 교회는 강건케 됩니다. 바울은 예언이 사람에게 “덕을 세우며(edification), 권면하며, 위안한다. “(고전14;3)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도 말합니다. “…….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지 않는다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고전14;5)
그는 통변이 있는 방언은 예언과 동등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방언을 통변한다면 예언하는 자가 더 낫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5전짜리 2개는 10전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5전 짜리 2개가 10전 짜리 하나는 아닙니다. 바울의 예언은 10전 짜리와 같다고 말합니다. 10전 짜리는 5전 짜리 하나(방언을 말함)보다 더 낫습니다. 그러나 통변과 함께 하는 방언은 예언과 동등합니다. 예언은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입니다. 예언은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아닙니다.(그러나 어떤 때는 말씀을 선포하는 중에도 예언적 요소가 있습니다.) 만일 예언이 말씀 선포였다면 당신은 말씀 선포를 위한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말씀 선포를 위해 공부 해야만 합니다.
바울은 “인정된 자로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study)" (딤후2;15)고 했습니다. 당신은 방언이나 통변을 위해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예언을 위해서도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들은 성령님의 영감으로 말미암아 옵니다. 물론, 어떤 사람이 영감으로 말씀을 선포할 때 갑자기 그가 생각지도 않은 것을 말한다면 그것은 영감이며, 예언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방언과 통변이 합하여 교회에 덕을 세웁니다(edify).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방언과 통변이 말해질 때 불신자들은 하나님이 임재 한다는 사실 앞에 설득되어지고, 종종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구원받게 됩니다.
예수께서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그들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막16;17)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것은 개인적이거나 공개적인 두 경우를 포함합니다. “그들이 병든 자에게 손을 얹으면 나으리라” (18) 이것도 개인적이거나 공개적인 두 경우를 포함합니다. 또 다른 표적은 “그들은 새 방언으로 말하며“(17) 입니다.
물론 우리는 방언으로 예배 중에 길게 기도하는 것을 원치 않는데, 왜냐하면 통변이 없다면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알아들을 수 없고, 또 힘을 얻지도 못할 것입니다. 강단 앞에 나와서 기도할 때 당신이 원한다면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도 좋습니다. 당신이 강단 앞으로 나간 것은 힘을 얻기 위해서 나갔으니까요. 만일 모든 사람이 손을 들고 예배 중에 기도한다면, 방언으로 기도해도 좋습니다(나는 모든 예배마다 강단에 서서 그런 식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회중이 방언하는 것을 그치면 나도 방언 기도를 멈춥니다. 내가 만일 방언 기도를 계속하면 회중이 힘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최고의 특권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저자에 관하여
케네스 해긴 미니스트리는 그가 17세 때 선천성 기형 심장병과 불치의 혈액에 관계된 질병에서 기적적으로 치유 받은 이래 60여 년이 넘었다. 오늘날 케네스 해긴 미니스트리의 사역범위는 세계적이다. 이 미니스트리의 라디오 프로그램인 “방송 믿음 세미나(Faith Seminar of the Air)"는 미국 전역과 100여 개의 나라에서 들을 수 있다. 그 외에도 무료로 배포하는 월간지인 ”믿음의 말씀(The Word of Faith)", 전국적으로 행해지는 “신유 전도 집회”, 레마(RHEMA)성경 통신 학교, 레마 성경 훈련소, 레마 동창회와 국제 레마 목회자 협회(RHEMA Ministerial Association International) 및 교도소 사역이 있다.
역자에 관하여
김진호 목사는 충북 제천 출신으로 육군사관학교(31기)를 졸업한 후 미국에 유학, 위스컨신 주립대학 경영 대학원(경영정보석사) 및 필립스 신학대학원(M. Div.)을 졸업했다. 1989년 10월 가락동에 예닮교회를 개척, 섬기던 중 2000년 5월 레마 성경 훈련소에서 1년간 수학한 후, 현재 분당 예닮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저서로는 새롭고 풍성한 삶, 나의 사랑 나의 교회여, 번역서 믿는 자의 권세,당신이 알아야 하는 신유에 관한 일곱 가지 원리 기도의 기술 인간의 세 가지 본성 믿음의 계단 어떻게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 받을 수 있을까?, 소책자 새로운 탄생,왜 방언을 말하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재정 분야의 순종, 말등이 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죄인의 기도(A Sinner's Prayer)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나는 예수 이름으로 당신께 나옵니다.
당신의 말씀은 “내게 오는 자는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요6;37)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나를 내 쫓지 않으시고 받아들이실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말씀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10;9,13)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내 마음(heart)으로 믿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의롭게 하시려고(for my justification)
죽음에서 살아나시게 되셨음을 믿습니다.
나는 그의 이름 - 예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버지 당신께
나를 지금 구원하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말씀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나의 마음(my heart)으로 믿고
이제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구원 받았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서명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날짜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사는 이야기 > ♪♪책을 읽고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옳은 사고방식 틀린 사고방식 (0) | 2006.06.20 |
---|---|
내 마음속의 피터팬 (0) | 2006.06.03 |
믿는자의 권세(7.8)--Kenneth E. Hagin 지음 김 진호 옮김 (0) | 2006.06.03 |
믿는자의 권세(5,6)--Kenneth E. Hagin 지음 김 진호 옮김 (0) | 2006.06.03 |
행복한 왕자--동화 (0) | 2006.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