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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삶의 현장] 항구에서 만난 사람들

동네 사람들(통하니) 2006. 7. 2. 23:41

케이프타운은 해양도시라 차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각양각색의 바닷가를 만날 수 있다.

유럽의 낭만적인 바닷가 풍경을 그대로 닮은 캠스베이

케이프타운 숨은 그림 찾기의 즐거움을 느껴볼 수 있는 칵베이

병풍처럼 둘러싼 산을 넘나드는 운해와 함께

푸른 파도를 만끽할 수 있는 콜스베이

100년 넘은 기차 역사의 그림이 고즈넉한 뮤젠버그 해안

언제든지 맨발로 손바닥만한 조개를 잡을 수도 있는 빅베이...

원한다면 일년 삼백육심오일을 나름대로 분위기가 다른 바닷가를 찾아

그 나름의 독특한 맛을 느껴볼 수 있다.


케이프타운 핫베이(hout bay).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면 훌쩍 가보고 싶은 곳이다.

핫베이 역시 그 많은 바닷가 중의 하나일 뿐이다.

바닷물을 안은 움푹한 해안선이 마치 잔잔한 호수를 연상시킨다

그 잔잔한 바닷가에 크고 작은 배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케이프타운으로 관광을 오는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곳이기도 하다.

그 유명한 물개섬을 가기 위한 유람선이 바로 핫베이에서 떠난다.

작은 돌섬 위에 살고 있는 수천마리의 물개를 만나 보는 것도

케이프타운 여행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내게 핫베이가 다른 곳 이상으로 매력적인 이유는

치열한 삶의 한 장면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누구의 삶,

그 어느 삶이 치열하지 않겠냐만 항구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에서는

다른 삶에서 느낄 수 없는 강인함을 느낄 수 있다.


케이프타운에 살면서 늘 보고 지나는 가난한 흑인들의 모습.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연민도 느끼지 못하게 된 그 일상의 모습들.

걷기 싫어도 걸어야만 하는 치열한 삶,

어디에서나 인생의 힘든 여정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항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는

연민보다 차라리 건강함과 치열함을 느낄 수 있어 오히려 행복하다.


해가 좋던 어느 날 느즈막하게 핫베이를 또 찾았다.

짠 바다 냄새가 훅하고 밀려들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하루 종일 북적였을 관광객들은 많이 빠져나가고 항구는 이미 한산하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공예품을 팔던 젊은 남자가 짐정리를 서두른다

사진을 찍어도 좋냐고 묻는 나를 향해 건조한 웃음 한번 웃어보이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자기 할 일에 열중이다.

 

 


그 뒤에 그 남자의 아들인 듯한 꼬맹이가 장난이 한창이다.

아빠를 따라 항구로 나온 아들은 나들이가 그저 즐겁기만 하다.

오늘 아빠의 수입이 좋았다면 집에 돌아가는 길에

주전부리 과자봉지 하나가 들릴지도 모를 일이다.

 

 

세워둔 배 한쪽에서 생선 흥정이 한창이다.

입에 안 맞는 생선을 선뜻 사주지 못해 유감이다.

사진 찍는 나를 잡아끄는 손이 있다. 좋은 사진감이 있단다.

뱃사람다운 얼굴에 어울리는 목소리를 가진 남자가 바닷 가재를 꺼내놓는다.

직접 잡은 것인지 자랑스러운 얼굴로 가재 앞에서 포즈를 잡는다.

싱싱해보이는 그 가재를 선뜻 사주었으면 좋겠지만

그 역시 잘 먹는 음식이 아니어서 미안한 마음으로 돌아선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생선을 손질하는 여자의 손놀림이 능숙하다.

버려지는 생선 위로 갈매기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날아들며 소란스럽다.

어디에서나 그렇듯 아프리카의 여자들은 강하다.

역시 누군가의 강한 어머니일 부둣가 한 여인의

생선 손질하는 손놀림에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한다.

 

 

 

 

갑자기 흥겨운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물개섬으로 나갔던 배가 들어오고 있다.

잠깐의 바닷 여행을 즐기고

뭍으로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을 반기는 사람들이 있다.

항구에 어울리지 않는 의상을 입은 몇 명의 남자가

정열적으로 노래하며 배를 반긴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다. 아버지와 아들인 것 같기도 하고...

저들은 어떤 관계일까?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향해

정열적인 노래를 마친 사람들의 모자 위로 동전이 떨어진다.

노래를 하면서도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을 잊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잠시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들에게도 삶이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어두운 곳에서의 유혹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두운 곳보다는 차라리 잠시라도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마음껏 노래하고 즐거울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에 박수를 보낸다.

 

 

 


춤추고 노래하는 한 무리의 남자들 뒤에 또 한사람의 악사가 앉아 있다.

깡통으로 만든 기타 줄을 퉁기고 있다.

제대로 된 음악이 만들어질 리가 없다.

듬성듬성 빠진 이로 노래가 제대로 될 리도 없다.

찌든 얼굴과 달리 그의 가느다란 손가락에 눈이 한참을 머물렀다.

그는 과거 한때 진짜 기타 줄을 울리며 노래하던 멋진 젊은이였을까...

그의 앞에 놓인 깡통에 동전 한 잎을 떨어뜨리며 잠시 마음이 우울하다.

하지만 그건 내 척도에서 바라본 것일 뿐...

그들 삶은 그들 삶대로 행복과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저녁 노을이 바닷물을 붉게 물들일 때까지

항구 이곳저곳을 어슬렁 거리다가

핫베이에 가면 빼놓을 수 없는 작은 레스토랑을 찾았다.

크고 화려하지 않지만, 우아한 곳은 더더욱 아니지만

이곳의 피시앤칩스는 어느 곳의 그것보다 싸고 맛있다.

여름에 가면 피시앤칩스 한봉지 사려고 길고긴 줄을 서야만 한다.

(FISH & CHIPS- 영국의 가장 대중적인 음식중의 하나인

생선과 감자 튀김, 신문지에 싸서 파는 것으로 유명하다)

피시앤칩스 한봉지를 사들고 바닷가가 내다보이는 곳에 앉았다.

 

 

 

노을을 마주한 산으로 구름이 넘어오고 있었다.

해는 맞은편으로 지고 있건만

정작 산으로 넘어오는 구름이 붉게 물들고 있다.

추위와 배고픔도 잊고 한참을 넋을 놓고 그 장관을 바라본다.

 

 

핫베이에서의 반나절은 그렇게 후딱 지나가버렸다.

돌아오는 길은 이미 어둠이 내려앉고 있다.

불과 몇 시간동안의 짧은 외유였지만

항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얻은 에너지와

위대한 자연의 가르침으로 한동안은 또 마음이 넉넉해질 것 같다.


출처 : 케이프타운 희망봉에서
글쓴이 : 유 연 원글보기
메모 :

세계 3대 드라이브 코스 중에 하나라는 CHAMPMAN'S PEAK 입니다

N1 고속도로를 따라 내륙으로 내달리다 보면 만나게 되는 부스터 지역의 와인팜이다.
건기인 여름에 주변 다른 곳은 다 말라 누런 색으로 변해도 와인팜만은 푸른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