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내가 가본 세상(해외)

덴마크에서--러시아까지(9) 페테브르그의 겨울 궁정

동네 사람들(통하니) 2010. 8. 3. 20:51

에르미따쥐(겨울 궁전) 박물관

 

파리의 루브르 미술관, 뉴욕의 매트로폴리탄 미술관과 함께

세계3대 미술관으로 손꼽히는 미술관이다.
러시아 제정 시대에는 황궁으로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내부는 호화스럽다.
400의 방에 300만점에 달하는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데

이중에4,000점이 예카테리나 여제가 서유럽에서 사들인 것이다.. 

러시아 회화작품과, 레오나르도·다·빈치, 라화에로, Renoir, 폴 세잔느, 고호등의

의 작품과 고대 세계의 발굴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은 에르미타쥐의 다섯채 건물 중의 하나며

황제의 겨울을 위해 엘리자베따 여제의 명령으로 이태리 건축가에 의해

1762년 완공되었고 1057개의 방과 117개의 계단 2,000여개의 창으로 이어 졌다

미술 품 수집광인 예타카리나 2세는 사들인 소장품을 보관하기위해

겨울 궁전 옆에 小말루이 舊스타르이 에르미타쥐 를 증축하고

新노부이까지 신축한것을 연방 정부가 건물 사이에 통로를 만들어

국립 미술관으로 만든것이 에르미타쉬 박물관이며, 

예카테리나 여제가 은둔지라는 푸랑스어 에르미타쉬로 부른데서 유래 

 

 

 

 

 

 

 

 

 

 

 

사람이 너무 많아서 줄을 서서 기다리면 3시간 이상이 걸린단다.

재치있는 가이드 말씀이 뒷문 쪽으로 혼자 먼저 들어가서 표를 사면 되니까...

속절없이 비를 맞으며 기다릴밖에--에구구 요기 우산쓰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팀

그런데 이 뒷문을 지키고 있는 경비 아저씨가 점심 먹으러 갔다니

정문쪽은 구경도 못하고 부리나케 따라들어 갔다.

조오기 기둥있는데 사람 보이지요 그리로 들어 갔다나..ㅠ ㅠ ㅠ

 

 

 

 

 

겨울궁전 내부의 이모저모

 

결혼 기념 촬령도 하고...

 

 

 

 

 

 

 

엘리자베따 여왕(표트루1세의 딸)은

후손이 없으므로 언니의 아들( 조카)  울리히를 황태자로 지명하지만 영리하지 못하므로

예카테리나를 황태자비로 간택한다.

그는 황태자보다 영리하고 인격적으로 많은 신망을 받고 정치적으로도 남편보다

유능한 정치 능력이 있었다.

남편 표트르3세가 즉위하였지만 푸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외교적 실수로 신의를 잃어

귀족들과 적대적인 관계에 이르게 되고

1762년7월 귀족을 중심으로한 쿠테타에서 폐위되고 왕비인 예카테리나 3세가 왕의 자리에 오른다.

 

캐서린 대제는 표트르1세의 러시아 개정을 이어  중앙 통제 정치를 했고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농민을 위한 경제 정책에도 힘썼다 .

대외 정책에도 성과를 거둬 크리미아 반도 까지 합병했고 프랑스를 모델로 개혁하려 했다.

 

캐서린의 사생활은 정숙하지 못했다고 한다.

피터3세는 근위대장 멘스코프의 첩이던 예카테리나를 좋아해서

선물로 받았다는  가이드의 말이 있듯이

그녀는 대제가 된 후에도 멘스코프를 비롯해 7명(또는20명)의 정부가 있어 늘 스캔들이 끊이지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대제가 된것은

러시아 국토를 확장 시켰고, 문예 부흥 시대를 열어 놓았고

그녀는 예술가들의 보호자며 학교와 극장을 짓고, 황실 발레 학교를 세워 많은  인재를 발굴하기도 하며

푸쉬킨, 토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차이코프스키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배출시킨 초석이기도 한

여걸 이기 때문이라 한다. 

 

 

 

 

 

 

여기서 볼 수 있다는게 신기하고 반가웠다.

 

 

 

 

 

 

 

 

 

 

 

 

 

 

 

 

 

 

 

 

 

수 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우리에게 허용된 시간은 고작 한두시간

수박 겉 핥기란 말도 어울리지 않을 만큼

수박을 슬뻑 만저만 본 기분이다.

 

이곳에 다른 분들의 사진도 올린다 -내가 못본 곳이고

다음에 가실 분들이 필히 보고오실곳

 

 호박방

이 방은 내부장식을 모두 호박 (얀따르나야 꼼나따) 을 사용해 꾸며서

세계의 기적이라 칭찬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독일군이 퇴각한 후, 넓은 방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도 이 호박들의 행방은 묘연하지만 복구 작업이 착실하게 진행되어

2003년에는 오리지날로 재현된 호박의 방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