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내가 가본 세상(해외)

덴마크에서--러시아까지(10) -----러시아-페테르부르그

동네 사람들(통하니) 2010. 8. 4. 13:21

러시아

 

                                                        

 국기                            국장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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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1000년밖에 안된 역사를가졌고, 표트르 1세 때 국가 체제를 정비하며 러시아 제국으로 발전하였다

 그후1922년에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이 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 후에 소련은 초강대국으로 성장하여 미국과 냉전을 펼쳤지만, 통제경제의 파탄등으로

1991년 12월 25일에 소련은 붕괴해 구 소련 구성국의 연합체인 독립국가연합(CIS) 가맹국의 하나가 되었다

2008년 3월 총선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러시아의 새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푸틴 전 대통령은 은퇴하지 않고 메드베데프 정부에서 권력이 크게 강화된 총리 직을 맡아 장기 집권을 이루려하고 있다.

 

국토- 매우 넓어, 북동유럽에서 우랄 지역을 거쳐서 시베리아와 극동 지방에 이른다.
          총면적은 미국의 약 2배에 조금 못 미치는 1,707만 5,400㎢ 이다.

               세계에서 가장 영토가 넓은 공화국으로서,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있다

위치 : 동부 유럽            수도 : 모스크바                       언어 : 러시아어


기후

1월 평균 기온이 영하 40℃가 되며 여름 평균15-16도 라고 하는데 모스크바는
지난6월24일 기온이 영상30도였고,

요즘은 더운 날씨로 인한 화재로 곤란을 겪는 이상 기후를 나타내고 있다

 화폐 : 루블 (ruble/Rub)

 

 

    페테르부르그      ==   북방의 베니스

 

 

 

 

표트르1세에 의해 계획된 물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Sain Petersburg)는 발틱해 핀란드만의 입구의 네바강에 위치한 러시아 연방도시.
 Petrograd(1914-1924)와 Leningrad(레닌그라드, 1924-1991), Peterbrug라고 불리기도 한다

1703년 5월 27일,  러시아의 챠르 피터 1세에 의해 세워진 이 도시는
 2백년이상(1713-1728, 1732-1918)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으나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에 1918년 수도가 모스크바로 천도되었다.
모스크바 다음으로 큰 도시이며 유럽문화의 중심지이며 발틱해의 중요한 러시아 항구이다.

러시아에서 가장 서양에 가까운 도시로 여겨지며.
도시가 유네스코 세계 유산 지역 으로 지정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큰 예술박물관인

에르미따쥐박물관(The State Hermitage, Hermitage Museum)이 소재해 있기도 하다.
200년동안 러시아의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였던 이 도시는  '북쪽 수도'이기도 하다.

 

 

 

 

천여년의 역사를 가진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중

피터1세(표트르대제), 엘리자베따 대제, 예타카리나2세(또는대제),

알렉산드르1세 를 빼면 가이드가 할 말이 없는듯 했다. 

 

피터대제 

상트 페테르부르크라는 도시가 어떤 곳인가를 알려면 먼저 피터대제(표토르 대제 1682 - 1725)를 알아야 한다.

북위 60' 선상에 위치하며,  홍수가 빈발하고, 연간 평균기온이 4' - 5'에 불과한 춥고 음습한
이곳에 북구의 베니스라 불리울 화려한 도시를 건설한 사람이 바로 피터1세(영국식)그였기 때문입니다.

 

로마노프 왕조의
알렉세이(Aleksei Mikhailovich Romanov/ 1629 ~ 76) 왕의
14번째 아들로 태어(1672년) 태어났지만 겨우4살때 아버지를 잃고
이복형 페드로 3세(Fedor Ⅲ / 1662 ~ 82)가 14살에 황제가 되고왕위를 계승한지 6년만에 죽자

 

 

 

표트로1세의 도시 계획에 의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운하

한 블록마다 운하가 있는것 같았다  

 

 

10세인 표트르와 6살 더 많은 이반을 둘러 싼
귀족들간의 권력 줄서기가 시작되는 가운데
총 주교와 귀족들간에 극적 타협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영특한 표트르를 황제에 추대하게 된다.
 이에 이반의 동복( 同腹) 누이 소피아가 줄을 섰던 귀족들과 합세하여 반란을 일으키고(10살 어린 표트루에게
7일 동안 온갖 못된짓을 하여 그의 인격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 사태를 수습하기위해 소피아를 섭정으로 이반을 이반 5세로, 표트르를 표트르1세로하여 공동 통치가
시작 되었지만,권력은 섭정인 소피아에게 넘어 갔고 신변의 위협을 느낀 표트르는 어머니와 추종 세력과
함께 모스크바를 탈출하여 시골에서 세월을 보낸다

 

 

그러나 표트르는 모스크바에서 빼돌린 진짜무기로 병정 놀이를하며 어른들을 끼여들인다.
이런 병정 놀이가 외국인 장교와 기사들이 심심풀이로 거들게 되면서 훈련의 강도가 높아지고
작전과 포술( 砲術)조선술(造船術) 등 군사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도 아울러 배웠다.

오국인과 사귀는 동안 그들의 문화를 알게되어
 표트르 1세의 서방 유럽과의 접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런 소문이 소피아에게 전해지자 궁정의 총 병대를 보내 일망 타진하려 하였으나
놀이로 시작하여 잘 훈련된 표트르는 위기를 모면하고 총병대를 자기 변으로 끌어들여
크레므린을 점령하였고 총 병대는 표트르1세를 황제로 맞이 했다고 한다. 

 

 

 크레므린으로 돌아온 피터1세는 모후를 섭정으로하고
병정놀이(군사훈련)에만 열중하다,

5년후 모후가 죽자 22세의 청년 피터1세의 세상이 되었다 

 

 그는 황제임에도 신분을 숨기고 네델란드의 조선소에서 햄머를 들고 일했고,
네델란드에서 공장, 미술관, 병,원 양육원, 천문대, 해부학 교실들을 다니며 공부했하여

다방면으로 서방 문물을 습득했고, 다음해에는 영국에 건너가 최신식 군함을 보는둥

대학, 극장, 조폐국, 국교회, 의회들을 살펴 배운 것을 기초로

재임 기간 북방 후진 국 러시아를 서구화로 실현 시킨다.

 

이삭성당

이삭 성당 돔은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101.5m

성 이삭의 날에 태어난  피터1세를 기념하기위해 세워쪘으나

타버리고 에카테리나대제때 다시 시작해서 알렐산드르1세때

완공 되었다 한다. 우리는 외형만 보았다.

 

뿐만 아니라 긴 전쟁 끝에 러시아의 숙원인 발트해를 차지하는등 
후진국에서 강대국으로의 발돋움을 하게 한 왕이다
러시아의 원로원은 표트르 1세에게 임페라톨(大帝 혹은 皇帝)의 칭호를수여했다
.

 

 

 황제 니꼴라이 1세 청동 기마상

이삭성당  광장에 있고

 뒤쪽에 보이는 건물이 니꼴라이왕이 딸 마리 공주를 위해 지은 궁전인데

말와 동상의 궁둥이가 보기 싫어 이사갔다고 한다.

 

 

 스웨덴과의 북방전쟁에서 이겼다고...

 

 터키와의 크림전쟁에서 이겼다고

 

 

 

 

 

네바 강, 토끼섬의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그리스도부활성당

 

 

 

 

알렉산드로  기둥과 궁전  광장, 바로 앞이 에카데리나 미술관이다. 

 

 

 

 

 

 

 

러시아 군의 영광을 상징하는 곳, 카잔 성당  --하나투어에서
넵스키 대로를 걷다 보면 길 한쪽 가에 아치형의 성당이 하나 위치해 있다. 이는 스트로하노프 백작의 농노 출신 건축가 바로니킨(A.Varonikhin)에 의해 1801년부터 10년에 걸쳐 지어진 성 카잔 성당이다. 처음에 이 성당을 세울 무렵 바로니킨은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기독교 정교회의 제단은 서쪽을 향해야만 했는데 그렇게 하려면 입구가 넵스키 대로를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즉 넵스키 대로에서 볼 경우 성당의 측면이 보이게 됨) 이에 생각을 해 낸 것이 바로 석고대리석으로 1m정도씩 이어서 만들어진 94개의 코린트 양식 기둥으로 성당의

주위를 둘러싸는 방법이었다

 

 

카잔 성당이 완성된 후 러시아는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지금도 성당 안에는 승리의 트로피와 상대군으로부터 탈취한 군기 등이 걸려있고,

 이 곳에서 러시아 군대의 위대한 장군인 쿠투조프(Kutuzov)의 장례식이 거행되기도 하는 등

 카잔 성당은 러시아 군의 영광을 상징하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1딸러에 둘씩 들어가 볼일을 본 간이 화장실

 

 

 

  

페테르브르그 공항에서

 

 

 

 

러시아 역사 연대표(표트르 대제~현대사회) 

재위왕

연대

사건

내용

표도르

1584~1598


모스크바 대공국 황제 : 표도르 이오아노비치가 즉위

1591

류릭 왕조 단절

황태자(드미트리)가 피살되면서 러시아 초기 류릭왕조는 단절

보리스

1598~1605


보리스 표도로비치 고두노프가 황제 즉위

1604~1613

러시아의 혼란기

왕조가 단절되면서 왕조가 혼란되고 가짜 왕들이 등장, 각지 의용군 등장

미일

1613~1645

로마노프 왕조

미일 표도로비치 로마노프가 황제로 즉위하여 로마노프 왕조가 시작됨

알렉세이

1645~1676


알력세이 미하일로비치의 즉위

1648

소금봉기 사건

농민들의 저항 시작

1654

우크라이나 연합

1월 8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재연합

1656~1658

스웨덴 전쟁

러시아가 스웨덴과의 북방영토를 놓고 전쟁

1666

종교 분열

러시아 정교회가 분열됨

1667~1671

스테판 라진의 반란

스테판 라진의 반란이 시작되었으나 1671년 진압

알렉세이

1676~1682


알렉세이 표도로비치의 즉위

알렉세예비치

1682~1682


이오안, 표드르 알렉세예비치 형제가 동시에 즉위

소피야

1682~1689


황녀 소피아가 7년간 통치함

1886

폴란드와 조약

폴란드와 영구 평화조약을 체결함

표트르 1세

1689~1725


표트르 대제가 즉위함, 서유럽화 정책을 추진시작

1695

해군창설

서유럽식 해군의 창설, 율리우스력 제도의 시행

1697~98

유럽 시찰

1차 유럽여행(1716~17년 2차 여행을 함)

1703

도시 건설

상트 페테르부르크시를 건설함(1713년 수도로 하여 이전)

1711

원로원 신설

원로원을 설치하고 귀족회의를 폐지함

1717

해외 원정

중앙아시아 원정을 시도

1721

임페라토르 사용

차르 칭호를 버리고 <임페라트르> 칭호 사용

1700~1721

북방 전쟁

스웨덴과 21년간 전쟁끝에 21년 협정체결(니스타트 화의)

예카테리나 1세

1725~1727

학술원 창설

1725년 학술원 창설, 1726년 비엔나 동맹 참가, 추밀원 설치

표트르 2세

1727~1730


표트르 2세 즉위

안나 이바노프

1730~1740

페르시아 협정

1732년 페르시아, 1735년 이란과 조약 체결

1739

벨그라드 평화조약

오스만과 조약을 체결

이반 6세

1740~1741


2년간 통치 후 추방

엘리자베타

1741~1761


엘리자베타 여제가 즉위

1741~1742

스웨덴과 전쟁

스웨덴과 전쟁 재개

1746

왕위계승전쟁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에 참가/개입

1755

모스크바 대학설립

모스크바 대학 설립

1760

농노 이주

지주계급이 농노를 시베리아로 유형시킬 권한을 부여함

표트르 3세

1761~1762


2년 재위 중 궁정 쿠데타로 피살되고 아내가 집권함

예카테리나 2세

1762~1796


남편의 뒤를 이어 집권

1764

교회법

교회영지가 세속화됨, 이반 6세의 복위 실패

1771~

영토확장

1771년 크림 반도 점령, 1772년 1차 폴란드 분할로 영토 확장
캄차카 반도 및 알레스카 진출

1773

푸가초프의 반란

푸가쵸프의 농민반란이 있었으나, 1774년 정부군이 진압

1774

1차 러투전쟁

쿠츄크 카이나르지 조약으로 흑해연안일대, 크리미아 일부 획득

1791

2차 러투전쟁

흑해북부 투르크령 병합, 크리미아 종주권 확보

1795

영국과 연합

프랑스에 대항하기 위하여 영국 및 오스트리아와 연합

바벨 1세

1796~1801


1801년 아들 등이 개입된 쿠테타로 피살

알렉산드르 1세

1801~1825

전쟁 시도

1804~1813(페르시아 전쟁), 1806~1812(러투전쟁), 1808~1809(스웨덴과 전쟁), (1812 조국전쟁 : 나폴레옹전)

1815

신성동맹

빈체제 하에서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영국과 조약 체결

니콜라이 1세

1825~1855


니콜라이 1세의 즉위

1825

데카브리스트 반란

젊은 장교들이 엄격한 관료주의, 전제주의 및 농노제 폐지 주장 : 실패

1853

크림 전쟁

러시아의 남하 정책 좌절 : 파리 조약 체결

알렉산드로 2세

1855~1991


개혁 정치의 시도

1861

농노제 폐지

1861년 농노제 폐지

1884

개혁 시도

토지제, 재판제, 교육 등에 대한 개혁 추진, 지방자치회 결성

1881

황제 암살

인민의 자유를 결성한 급진 테러단체에 의해 황제 암살, 개혁 중단

알렉산드로 3세

1881~1894


개혁 정치에 대한 반동으로 보수정치로 회귀

니콜라이 2세

1895~1917


니콜라이 2세 즉위

1904

러일전쟁

일본과 아시아 패권을 놓고 러일전쟁 발발 : 패전

1905

피의 일요일 사건

평화시위에 총기난사로 파업 시작, 1907년 1차 러시아 혁명 발생

1914

1차 대전 발발

1차 세계대전에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