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짭짤한 귤 한 조각과 그리운 계절의 향내

동네 사람들(통하니) 2010. 9. 19. 15:16

 

 

아무도 몰래 주변을 살피며 살짝

내 손에 쥐어주는 말랑하고 끈적한 느낌이 드는 물체를

쥐어주고 자리로 들어간다.

 

 

"아이고, 이게 뭐지?"

하도 은근하게 손에 전달된 물건이라

나도 모르게 가만히 쥐고 있다 살며시 펴 보았다.

 

귤 한쪼각과 약과 반 조각

얼마나 주머니 속에서 조몰락거렸는지

새까맣게 때가 묻어 반질반질하기까지 한 

 귤 한 조각과, 잘린 부위가 다 달아버린 약과 반 조각이다.

'이걸 어쩐다지?'

너무나 새까맣게 때가 묻었는지라 도저히 먹을 수 없는데...

 

 조심스레 백지를 깔고 내려놓았다

나에게 이것을 전해준 어린아이는

큰 일이나 해 낸 것처럼

'선생님 저 어젯밤부터 선생님께 드리려고 남겨 놓은 거예요

선생님 생각하는 제 마음 아셨지요?'라는 표정과
입가에 화안하게 퍼지는 미소를 그냥 흘려보낼 수가 없었다.

 

그 아이를 살 짝 손짓하여 내 책상 앞으로 불렀다.

"어디서 난 거니?"

"어제 제사인데요, 선생님 드리려고 제 몫에서 떼어놓은 거예요"

너무나 자랑스러워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데

가슴 저 아래로부터 따듯함이 밀려 올라와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이다.

 

 

 

  

 

   

 

   

아이에게 배당된 제사 음식이 얼마나 많겠는가

끽해야 귤 한 개 약과 한개 정도였을 거다.

다 먹어도 모자랄 텐데 먹고 싶은걸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참았을 그 아이가 너무 사랑스웠다.

 

 

 때가 아니라 사랑이 묻어 있는 것이다.

"고맙다, 그런데 선생님과 반씩 나눠 먹자."

귤 한쪽을 반으로 나눠서 그 아이 입에 넣어주고 나도 입에 넣는다.

약과 반쪽을 반으로 나눠서 그 아이 입에 넣어주고 나도 입에 넣는다.

 

귤의 달콤하고 새콤한 맛이 온몸으로 전해 진다.

약과의 달콤한 맛이 입안을 맴돈다.

아니 아이의 사랑이 입안에 가득한 향기가 된다.

행복한 순간이다 

 

 

 

    "선생님을 생각해 줘서 너무 고맙다.

           정말 고맙다."

 

난로 가에서

왁자 지껄 떠들어 대는 아이들의 소리에 목멘 내 목소리가 빨려 들어간다.

 

 

 

밥이 없으면 라면 먹으면 된다는 지금 아이들에게도

이런 일을 기대할 수 있을까?                                         

명절을 앞두고 나니

가난했던 옛날이 생각난다.

명절에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집은 그래도 괜찮은 집이다.

북어라도 넣어서 탕국을 끓이는 집도 괜찮은 집이다.

 

가정 방문을 가면

방과 마루와 부엌을 들락날락 거리지만

선생님께 대접할 게 없다며 애쓰던 부형 님들의 모습

결국 우물로 가서

시원한 냉수를 한 대접 들고 오는 어머니도 계셨다.

 

이렇게 못살던 우리나라가

몇 년 전의 쌀이 가득해서

금년 수매 분을 쌓을 데가 없는 나라가 됐다.

먹을게 많아 쌀이 없어지지 않는 나라

쌀 소비를 위해 쌀 막걸리를 만들어야 하는 나라

고향 찾는 차의 행열로 도로가 힘든 나라

그게 우리나라다.

얼마나 부자인가?

 

그런데 우린 지금 먹을 것이 많아 행복하다고 하는가?

더 많이 저 좋은 것을 쌓기 위해

물고 뜯는데만 힘을 쓰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그때 2학년이었던 그 아이는 지금 40살은 됐을 텐데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난 지금도 귤을 먹을 때마다 그 아이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