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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국내 1호’ 범죄심리학자 강덕지 국과수 범죄심리과장

동네 사람들(통하니) 2013. 9. 3. 00:40

“범죄자는 우리 주위에 있다” 

 

처벌보다 중요한 건 사전에 막아내는 일”  

 

 

 

 

 

 

강덕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범죄심리과장은 1981년 국과수에 입사한 뒤 30년간 우리나라의 범죄심리 분야를 개척한 인물이다.

1999년 국내 최초로 최면수사를 도입했고, 2000년 국과수가 범죄행동분석팀을 조직했을 때 첫 팀장을 맡기도 했다. 2011년 12월 정년퇴임을 앞둔 그를 만나 최근 잔혹 범죄가 늘어나는 이유와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법에 대해 들었다.

 

“그래 뭔 얘기가 듣고 싶어 왔소?”  

 

차를 받아 든 기자가 미처 입을 떼기도 전 까칠함이 묻어나는 말이 속사포로 이어졌다.  

 

“기자들 말이요, 큰 사건 터지면 열이면 열이 와서 하는 얘기가 ‘뭐 재미난 얘기 없냐?’ 이래요. 범죄 피해로 돌아가신 분이 있고 중상으로 병원에 누워있는 분도 있고 유가족도 있단 말이요. 범인은 감방 가서 수형생활 중이고. 어느 구석을 들여다봐도 범죄사건 중에 우리가 즐길 만한 내용이 없어요. 그래서 내가 ‘당신 가족이 당했다고 생각해봐라. 그 따위 재미난 얘기 찾겠느냐’고 그러지.”  

 

만만찮은 인터뷰가 될 것임을 예감하고 마음을 다잡는 순간 쐐기를 박는 말이 돌아왔다.  

 

“박 기자도 재미난 얘깃거리나 찾으러 온 거면 그냥 차나 한잔 마시고 돌아가세요.”  

 

2011년 12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 정년퇴임을 앞둔 강덕지 범죄심리과장을 인터뷰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10대들이 저지르는 강력범죄를 비롯해 연쇄살인과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묻지마 범죄’ 등 잔혹하고 흉포한 사건이 최근 두드러지게 많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범행 동기와 범죄자의 심리는 무엇인지, 우리 사회가 나날이 늘어가는 강력범죄를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등에 대한 의문을 풀고 싶다고. 우리나라 최초의 범죄심리학자로 지금까지 1000여 명의 범죄자를 만나온 강 과장이라면 해답을 알고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퇴임 직전 서둘러 인터뷰를 요청한 이유를 조목조목 밝히자 비로소 그의 표정과 말투가 누그러졌다.

 

   “범죄자는 따로 있다” 

 

▼ 일하면서 기자들한테 많이 시달리셨나봅니다.

 

“범죄 기사는 정말 조심해서 써야 해요. 물을 뱀이 먹으면 독이 되고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잖아요. 기사를 보고 반성하는 사람도 있지만 세세한 사건 기사를 보고 범죄 수법 같은 걸 자기 지식으로 만드는 사람도 있다고요. 범죄에 취약한 성향의 사람들이 그렇죠. 언제든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학습된 정보를 바탕으로 범행을 저지른다고. 옛말에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라’고 했잖아요. 범죄가 좋은 일도 아니고 그걸 시시콜콜 국민에게 알려주는 게 뭐 그리 좋겠어요. 난 범죄 사건에 대해 국민이 지나치게 자세한 부분까지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 ‘범죄에 취약한 성향’이 따로 있나요? 

 

“내 경험에 비춰볼 때 쉽게 범죄로 빠져드는 타고난 기질이 있어요. 과학적인 근거가 없어서 아직 학설로까지 정립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첫눈에 딱 보면 알 수 있지요. 소름이 쫙 끼쳐요. 여자 여럿을 죽인 친구가 있는데 경계성 인격장애를 가졌어요. 이 친구는 강간한 뒤 사정하고 마지막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는데, 그 단계를 하나하나 마치면서 성취감을 얻는다는 거예요. 대화 도중에 ‘(목을 조를 때) 손끝에 전해지는 짜릿한 느낌, 전율감’이러면서 몸을 막 떨어요. 눈빛과 표정이 순간적으로 확 변하고. 이런 부류의 사람을 만나면 ‘아, 이건 살면서 환경을 잘못 만나 빚어진 일이 아니구나’하는 느낌이 딱 오지요. 인간의 다양함이랄까 복잡함이랄까, 그런 걸 느낄 수 있는 사건이었죠.” 

 

▼ 그런 범죄자가 갖는 공통적인 특성이 있나요? 

 

“굉장히 침착하고 냉랭하고 차갑습니다. 범죄를 저지른 후에도 양심의 가책이나 죄의식 같은 게 없어요. 신체는 대체로 왜소한 편이죠. 몇 년 전 강화도 해병대 초소에서 경계병을 차로 치고 총기와 실탄을 탈취한 사건이 있었잖아요. 그 친구를 만났더니 ‘2002년 월드컵 때 사람들이 붉은 옷을 입고 미친 듯이 응원한 거 진짜냐? 어떻게 그렇게 흥분되고 좋을 수 있냐’고 물어요. 감정이 굳고 차가워서 웬만해선 즐거움을 못 느끼는 거지.” 

 

▼ 타고난 어떤 기질이 있다 해도 그런 사람들이 모두 범죄를 저지르는 건 아니죠? 

 

“흔히 점을 보면 무당이나 연예인, 범죄자와 형사가 비슷하게 나와요. 공통된 기질을 타고나도 대부분은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하지. 심리학적으로 인격장애는 경계성, 히스테리성, 분열성, 편집성 등으로 구별돼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이코패스’도 그중 하나죠.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을 가진 범죄자는 보통 2~3가지 복합적인 인격장애를 안고 있어요. 그런 범죄자는 반사회적인 성격일 뿐 아니라 아주 냉정하고 자기만 알아요. 그런데 군인이나 경찰 등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냉정하고 딱 부러지는 기질이 없으면 안 됩니다. 정 많고 마음이 흐물흐물하면 조직을 강력하게 통솔할 수 없지. 이렇게 유사한 기질을 타고나도 좋은 일을 하는 쪽으로 기질이 발현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쁜 길로 빠지는 사람도 있는 거지요. 그래서 사회적인 환경이 중요한 겁니다.”

 

   범죄자를 만드는 환경 

 

▼ 환경이 중요하다는 건 언뜻 범죄자들의 자기합리화처럼 비치기도 합니다. 

 

“대구 사과가 왜 유명해요? 똑같은 종자라도 대구의 풍토와 기온에서 자라면 맛있어지기 때문 아닙니까.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과거의 범죄사건은 동기가 단순하고 분명했지요. ‘배가 고파서 도둑질했다’ ‘유흥비가 필요해서 강도질했다’ ‘순간적으로 욱해서 사람을 찔렀다’…. 요즘처럼 범죄 동기가 뚜렷하지 않고 복잡한 사건이 별로 없었지. 요즘 강력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건 우리 사회가 복잡해지고 정신적으로 황폐해졌기 때문이에요. 지금의 사회 풍토가 범죄를 부채질하는 측면이 있다고 봐야지.” 

 

시종 카랑카랑하고 거침없던 강 과장의 말투는 ‘타고난 기질’과 ‘범죄 성향’에 대해 언급할 때면 조심스러워졌다. 지난 6월 미국 ‘뉴욕타임스’는 “일부 범죄학자들이 유전자가 범죄를 저지를 위험성을 높이고 그러한 특성이 유전되는지에 대해 조심스럽게 연구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를 소개한 국내 언론은 “유전자와 범죄의 연관성은 일부 유전자가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는 세로토닌의 분비를 억제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런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더 공격적이고 충동적인 성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 하지만 과학자들은 유전자만 갖고 누가 범죄자가 될지를 알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충동적인 성향을 억누르는 자제력이 약하다든지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큰 성향의 유전자를 갖고 있더라도 주변 환경에 따라 범죄 성향이 발현될 수도, 억제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똑같은 범죄 성향의 유전자를 갖고 있더라도 어떤 부모 밑에서 자랐는지, 또 어떤 친구와 사귀었는지 등에 따라 범죄를 저지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인간의 유전자가 범죄에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가설은 현재 범죄학자들 사이에서도 매우 조심스럽게 검토되고 있는 단계다.  

 

▼ 어떤 환경이 범죄에 영향을 미치나요? 

 

“1997년 외환위기 이전과 이후의 사회를 비교해보세요. 이전에는 우리 사회에 ‘정’이란 게 있었어요. 어려우면 돌봐주는 인간적·유기적 관계가 있었지요.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철저한 ‘승자독식’의 생존경쟁이 치열해져 나 아니면 자신을 구제할 사람이 없어졌잖아요. 외환위기 때 자살자와 노숙자, 이혼자가 속출했지요. 공생·공동체 문화가 살아있다면 어려움에 내몰릴 때 기댈 곳이라도 있을 텐데 이제는 그게 사라졌단 말이죠. 지금은 1등 아니면 전부 꼴찌 취급을 받아요. ‘패자부활전’이란 것도 없어졌고. 얼마나 억울하겠어.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어디 가겠어요? 사회가 황폐해지고 패자가 늘면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이 늘 수밖에요.”

 

   가해자 vs 피해자 

 

▼ 요즘 ‘묻지마 범죄’나 연쇄살인, 존속살인 등의 사건이 점점 늘어나는 느낌입니다. 범죄가 점점 잔혹해지는 것 같은데, 현장에서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과거에 비해 충격적이고 잔인한 사건이 확실히 많아졌죠. 지금 우리 사회가 정신적·인격적으로 문제아를 양산하는 환경이기 때문일 겁니다. 사회 전체가 정신적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분위기인데 그걸 풀어줄 장치는 없고 인성교육도 안 되니 성격과 인격에 문제가 오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니 사정과 배경을 모르면 동기도 불분명해 보이고 쉽게 이해가 안 가는 거지요. 과거에 비해 정신질환자도 늘었고, 질병이 아닌 성격장애,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도 많아졌어요. 이런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범죄를 저지릅니다. 불안장애를 가진 친구가 사랑하는 여자한테 버림받을까봐 늘 불안해하다 결국 자기를 떠나지 못하게 죽여버린 사건이 있었어요. 그런 거지요.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언젠가 자기가 살기 위해 그걸 풀게 됩니다. 밥 먹고 배설이 안 되면 변비가 되듯, 스트레스도 적당한 순간 배설하지 못하면 범죄가 되는 거예요. 분노 때문에 살인한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옛날에는 자극을 열 번 받아야 사람을 죽였다면 지금은 세 번, 네 번 만에 살인해요. 역치(·#53451;値) 수준이 낮아진 거죠.” 

 

▼‘역치’라는게  임계점이나 한계 같은 건가요 

 

“그렇죠. 심리학적으로 ‘역치’는 외부 자극에 대해 반응이 나오는 수준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람은 역치 상황이 되기 전까지는 참을 수 있지만 그걸 넘어서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반응하게 돼요. 자신이 살기 위한 반응이죠. 부모를 살해한 뒤 사체를 잔인하게 훼손한 명문대생 이은석 사건이나 교수 아버지와 할머니를 살해한 분당 대학생 사건, 최근 엄마를 죽이고 방치한 고3 학생 사건 같은 걸 깊이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있어요. 범인이 ‘저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 같다’는 심리적인 위협을 느꼈다는 점이죠. 역치를 넘어선 거예요.” 

 

강 과장은 이은석에 대해 “부모자식 사이를 떠나 아이를, 한 인간을 그렇게 철저히 짓밟고 폐허를 만든 예는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겉으로 볼 땐 잔혹한 범죄라도 속을 파고들면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함부로 손가락질할 수 없는 범죄가 많다는 게 강 과장의 얘기다. 강 과장은 이은석의 형을 통해 변호사를 선임하게 하고 가족을 설득해 탄원서를 받기도 했다. 그가 수십 년의 현장 경험을 통해 내린 결론은 “범죄는 동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범죄 동기는 동정한다”이다. 

 

▼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묻지마 범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길 가다가 아무나 죽이는, 흔히 말하는 ‘묻지마 살인’도 들여다보면 똑같아요. 이런 사람들은 주로 남 탓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든 문제를 남 탓으로 돌리니 자기반성이나 개선이 없고 발전도 없어요. 그 상태로 계속 사회와 부딪치니 실패할 수밖에요. 그럼 ‘이놈의 사회가 잘못됐다’고 분노를 쏟아내는 거지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살인을 저지른다고. 안 그래도 범죄는 달콤한 유혹인데, 정신적·기질적으로 취약한 사람은 범죄 유혹에 굉장히 쉽게 빠져요. 그래서 병든 우리 사회를 빨리 건강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국과수 30년 

 

▼ 범죄가 왜 ‘달콤한 유혹’인가요? 

 

“내가 보기엔 에베레스트 가서 죽는 사람이나 범죄자나 똑같아요. 험한 산을 타는 사람치고 ‘거기 가면 내가 죽는다’고 생각하면서 가는 사람은 없어요. 100% 죽는 걸 알면 가겠어요? 다른 사람은 죽어도 나는 사고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범죄자도 똑같아요. 자기는 분명히 안 잡힌다고 확신하지요. 그러니 유혹이라는 거예요. 스스로를 유혹하는 거지.” 

 

▼ 수십 년간 한 직종에 종사하면 흔히 ‘직업병’을 얻습니다. 결코 평범한 직업이랄 수 없는 일을 오랫동안 해오셨는데, 직업병은 없나요? 

 

“직업병은 없는데, 이 일을 시작하고 2년 정도는 말도 못하게 머리가 아팠어요. 살인범은 사람을 죽인 사람인데, 그 사람이랑 얘기하면서 깊이 파고들어가 보면 엄청난 가정폭력이나 평생 혼자 비밀로 간직할 법한 충격적 사연을 무수히 품고 있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게 나를 너무 아프게 한 거지. 밤에 잠도 안 오고 ‘정말 이럴 수가 있나’ 싶을 만큼 감당이 안 됐어요. 직업적으로 괴로움을 외부에 비치면 안 되니까 산에 가서 혼자 노래도 부르고 별짓을 다했지. 그러다 어느 순간, 살인이나 강도 등 범죄는 같아도 사람마다 동기와 심리, 배경이 다 다르고 거기서 얻는 게 있다는 걸 알았어요. 지금 내가 새로운 지식을 얻고 사람 공부, 인생 공부를 하는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달라집디다. 이 직업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것들을 통해 우리 사회 문제를 해소하는 데 기여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마음먹으니, 그 뒤부터 편안해지더라고.”  

 

국과수는 1959년 문을 열었다. 범죄심리실(현재 범죄심리과)도 이때 생겼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강 과장이 첫 직장으로 국과수에 들어온 건 1981년. 이후 그는 범죄심리 분야 개척자로 일하면서 최면수사 기법을 국내에 처음 도입했고, 2000년 범죄행동분석팀장을 맡는 등 30년간 현장을 지켰다. 

 

▼ 1980년대 초반이면 ‘범죄심리학’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때 아닌가요? 

 

“우리가 대학 다닐 땐 그런 학문이 아예 없었지. 심리학과도 서울에 고려대를 비롯해 세 곳 정도만 있었어요. 국과수 범죄심리실이라고 달랐겠어요. 들어와 보니 관련 업무를 위한 자료나 시스템 같은 게 전혀 없는 황무지입디다. 청소년 범죄에 대한 설문조사 같은 아주 부분적인 업무만 하고 있었어요.” 

 

▼ 황무지에서 범죄심리 분야를 어떻게 개척했습니까? 

 

“대학시절 전공 교수님이 공부를 빡세게 시켰어요. 덕분에 자료 찾는 방법을 제대로 배웠지요. 국과수 근무 초창기 때 미국심리학회 회장 앞으로 무작정 편지를 보냈어요. 그땐 성도 이름도 모르고 ‘프레지던트(president) 귀하’ 이렇게 수신인을 적어서. 미국 범죄심리 관련 논문 제목이나 학자들 이름을 알면 편지에 정확히 밝힐 텐데 그걸 모르니 우선 내 소개를 하고, 일하는 데 필요한 자료와 사람을 좀 소개해달라고 썼어요. 이 양반이 답장을 보내왔는데 인디애나대 교수 누구, 이런 식으로 대여섯 명 알려주면서 그들이 쓴 논문 제목을 세세히 적었더라고. 그 교수들한테 일일이 전화를 걸어 한국에서 ‘강덕지’라는 사람의 편지가 오면 이러저러한 논문을 찾아주라는 얘기까지 해놨다는 거예요. ‘역시 학문이 발달한 미국이구나’ 했지.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대만에도 편지를 보냈는데 동양권에선 답이 없더군요. 서양은 가타부타 답을 해요. 서양은 이래서 잘되나 그런 생각이 듭디다.”

 

   범죄심리학 개척자

 

외국 유수의 범죄심리학자들과 교류하며 입수한 엄청난 양의 논문과 자료는 국내 범죄심리학 분야 초창기에 강 과장의 재산이자 국가 재산이 됐다. 그가 ‘맨땅에 헤딩’하는 방식으로 모은 논문과 책, 자료를 분석해 보고서를 만들고 논문을 발표하자 경찰 등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그땐 강의할만한 실력이 못됐는데 저쪽에서는 필요하다고 가르쳐달라하니 나름 딜레마에 빠졌어요. 나 아니면 강의할 사람도 없던 때라 가서 하긴했는데, 지금까지 내가 지은죄 중에 가장 양심에 가책이 되는 일이죠. 부족한 지식으로 알은체한 거.”  

 

강 과장은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했다.  

 

▼ 사회 환경이 다른 외국과 우리나라 범죄 사이에 차이가 있지 않나요? 입사 초창기엔 범죄심리와 관련해 실질적인 업무도 없었다고 하셨는데요. 

 

“맨날 서양 자료만 뒤지려니 ‘이게 무슨 범죄심리학자냐’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당시 경찰 간부로 있던 친구한테 부탁해 1980년대 후반쯤부터 개인적으로 범죄자를 만나기 시작했어요. 그때는 우리가 공식적으로 범죄자를 만날 길도, 관련 규정도 없었기 때문에 말하자면 ‘야매’였죠. 공식적·본격적으로 범죄자를 만난 건 1999년부터입니다. 다양한 부류의 범죄자를 만나보니 책은 범죄를 이해하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이론일 뿐이라는 걸 알겠더군요. 그때부터 확신을 갖고 현장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한 거예요. 강력범죄자부터 마약사범, 조직폭력배까지 두루두루 만났어요.” 

 

▼ 범죄자들을 만나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범죄와 범죄자를 이해하는 건 결국 인간을 이해하는 거예요. 그 사람도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나와 똑같은 사람이잖아요. 범죄자를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여기고 내 삶에서 떼어놓으려고 하면 결코 그들을 알 수 없게 되죠. 처음엔 나도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요. 책을 보면 범죄자는 뭔가 다른 존재 같거든. ‘다름’을 자꾸 보려 하니까 오히려 그들이 잘 안 보였어요. 우리 사회가 범죄를 예방하려면 정확한 처방을 하고 대책을 세워야 할 거 아닙니까? 그 첫걸음은 범죄와 범죄자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거예요.” 

 

▼ 흉악범을 만나는 게 일이지만, 그래도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범죄자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있죠. 남편 앞에서 아내를, 딸하고 엄마가 같이 있는 데서 차례로 둘을, 임신한 여자를…. 그런 강간범들은 보기 싫은 정도가 아니에요. 솔직히 한 대 때리고 싶지. 같이 얘기해보면 ‘남자가 좀 하면 어떠냐’ 이런 뉘앙스를 풍겨요. 얼마나 무서운 얘기예요. 그만큼 여자 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거지.” 

 

▼ 실제로 강간범을 때리신 적은 없죠? 

 

“그랬다간 대번에 인권위원회에 제소하겠죠. 하여튼 강간범을 만나다보면 가끔은 ‘사람인가’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럼 우리 직원한테 그래요. ‘저런 놈을 앞에 앉혀놓고 욕도 못하고 웃으면서 얘기를 끝까지 들어줘야 하니, 우리 팔자가 대체 뭔 팔자냐?’ 그럴 때 직업적인 비애를 느껴요. 그래서 내가 ‘법만 만들지 말고 사람을 만들자’고 주장하는 겁니다.” 

 

▼ 사람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법도 필요하잖아요. ‘도가니 사건’을 봐도 그렇지 않나요.  

 

“전자발찌를 찬 채로 재범을 저지르다 잡힌 강간범이 있어요. ‘무슨 배짱으로 발찌까지 차고 그랬냐’ 물었더니 대답이 뭔 줄 압니까? ‘하고 싶을 때 전자발찌가 생각나겠어요?’ 그런 놈들은 범죄라고 생각하면서 일을 저지르는 게 아니에요. 여의도 높은 분들이 뭘 모르고 형량 높이자, 전자발찌 채우자, 이런 법을 만들고 있는 거지요. 물론 법도 필요하지. 그런데 우리는 법만 만든다는 겁니다. ‘죄를 짓든 말든 너희가 알아서 하는데, 일단 걸리면 벌은 이만큼 주겠어’ 하는 거지요. 국가가 그러면 안 되지. 법을 통해 죄를 묻는 것 못지않게 예방과 교육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방과 교육 

 

▼ 해외 선진국에서는 종종 우리 사회에서 보기 어려운 극단적이고 충격적인 범죄가 벌어지곤 합니다. 우리 사회에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어떤 대책을 마련해야 할까요? 

 

“우리 직원한테 그랬어요. 앞으로 10년 안에 우리나라가 강간범죄의 천국이 되고 존속살인 같은 범죄도 엄청나게 늘어날 거라고. 미래를 보는 신통력이 있어서 한 얘기가 아니에요. 지금까지 범죄가 흘러온 양상을 보면 그렇다는 거지요. 선진국을 보면 상상할 수 없는 범죄가 종종 일어나죠. 살인한 뒤 사람의 껍질을 벗긴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가학적 행위를 하는 범인들도 있어요. 그런 일을 저지르는 부류는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보고 자기가 당한 대로 상대에게 가학 행위를 합니다. 그러면서 점점 더 거기에 심취하게 돼요. 이런 걸 막으려면 아이들한테 미리 가정교육, 인성교육을 시키고 예방을 위한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겁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교육이 필요할까요?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배워요. 가정폭력을 보고 겪은 아이는 커서 그대로 따라 합니다. 조심해야지요. 또 대화가 없고 사랑도 없는 무미건조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막 크게 돼요. 충분한 부모 사랑, 친구와의 진정한 우정, 이런 것들이 다 인간을 성숙시키는 자양분인데 지금 우리는 그 부분이 결여돼 있어요. 전부 홀로란 말이죠. 범죄자들의 특징이 뭔지 압니까? 고립돼 있는, 심리적인 고아라는 점이에요. 그렇게 흘러가지 않게 하려면 가장 중요한 건 사람다운 교육을 시키는 건데, 아이들에 앞서 ‘올바른 부모’가 되는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고 봅니다.” 

 

▼ 또 범죄 예방을 위해 필요한 제도나 시스템은 어떤 겁니까? 

 

“범죄자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면서 형기를 채우도록 해야 합니다. 미국의 경우 교화 시스템이 구축돼 있어요. 우리도 지금처럼 모아놓고 작업만 시키지말고‘교화’를 시켜야지. 범죄자가 가진 트라우마를 해소할 수있는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해요.그러자면 심층면담을 통해 범죄자 심사와 분류를 철저히 해야겠지요. 국가가 아직 이런데 관심을 덜 써요.” 

 

▼ 지난 30년을 돌아보면 보람이 크시겠습니다. 

 

“범죄심리학 전문 대학원이 생겼을 정도로 범죄심리 연구가 학문의 한 분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동안 교육한 범죄행동분석 전문요원이 경찰에만 30명이 있고요. 그런 게 성과이자 보람일 수 있겠지요. 개인적으로는 범죄자들이 내 손을 꼭 잡고 감사하다고 절을 할 때, 그 순간 온몸으로 짜릿한 보람이 느껴져요. 이 사람들 처음 만나면 긴장해서 얼굴이 굳어 있어요. 그러다 마지막 순간에 편안하고 밝은 얼굴이 됩니다. ‘정말 시원하다’면서 울어요.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동안 스스로 치유하는 겁니다. 그런 순간 느끼는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 내가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있구나,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두 차례에 걸친 인터뷰가 끝날 즈음 강 과장은 ‘여담’이라며 한 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어느 날 만난 범죄자가 “선생님, 국회의원도 만납니까”라고 물었다는 것이다. 그의 물음 속엔 “우리 사회 권력층이나 지도층의 범죄는 나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내 범죄만 죄가 되느냐”는 속내가 담겨 있었다고 한다. 강 과장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몹시 부끄러웠다”고 했다. 

 

“범죄자는 누가 가르친다고 변하지 않아요.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반성하고 바뀌지요. 그런데 우리 사회의 본이 될 사람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어요. 그 사람들이 사회 전반에 끼치는 악영향은 오히려 살인보다 더 심할 수 있습니다.”

 

강 과장은 인터뷰를 마치면서 “이 말은 꼭 써달라”고 당부했다.  

 

 

<자료 : 신동아(박은경/신동아 객원기자)>

출처 : 두 리 번
글쓴이 : haj4062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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