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삼상 7:12-14
제목: 미스바의 은혜
찬송: 301장
목표: 미스바에 임했던 은혜를 사모하게 한다.
지난주에 몸살감기로 고생했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선생님이 진찰하면서 목에 염증이 심하다며 약을 발랐습니다. 열이 39도라며 엉덩이와 팔에 주사를 놓고 4일분의 약을 처방해주었습니다. 의사의 처방대로 약을 먹고 회복했습니다.
이처럼 진단과 처방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은 아벡전투에서 패하여 하나님의 언약궤를 블레셋에 빼앗겼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니하스, 그리고 34,000명의 군사가 죽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제사장은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엘리 가문의 몰락과 더불어 이스라엘에게 큰 비극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실패한 원인을 우상숭배라고 진단하고 이방 신들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처방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을 미스바로 모이게 하여 오늘날의 부흥회와 같은 집회를 했습니다. 미스바 부흥회를 통하여 이스라엘에 놀라운 은혜와 변화가 있었습니다. 오늘저녁부터 부흥회가 시작됩니다. 미스바의 은혜가 광성교회 부흥회에 임하기를 소원합니다.
미스바의 은혜는
1. 간증의 은혜입니다.(12절)
12절,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언약궤가 블레셋에 있는 동안 그 땅에 재앙이 내리자 블레셋 사람들은 법궤를 다시 이스라엘로 돌려보냈습니다. 벧세메스를 거쳐 기럇여아림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 20년간 안치되었습니다. 예배를 멸시하고 법궤를 이용하려했던 이스라엘이 이제는 하나님을 사모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실패원인을 바르게 진단하고 처방전을 백성들에게 제시했습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3절) 사무엘 선지자의 처방전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순종했습니다.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했습니다.
이 때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을 미스바로 모이게 했습니다. 모인 백성들은 종일 금식하며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라며 회개했습니다. 그동안 그들이 전쟁에서 패하고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긴 원인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기 때문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사무엘 선지자의 진단과 처방에 순종하여 철저히 회개하며 하나님께 겸손하게 나아갔습니다. 실패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처방했던 영적 리더였던 사무엘 선지자도 훌륭했습니다. 또한 사무엘 선지자의 처방에 순종했던 백성도 훌륭했습니다. 주의 종과 백성이 하나가 되어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했을 때 변화가 시작되었고 은혜가 임했습니다.
대적 블레셋은 그 때를 기회로 삼았습니다. 무장하지 않은 백성들이 모여 있을 때 공격하면 손쉽게 승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사탄은 성도들이 은혜 받는 것을 싫어하여 방해를 합니다. 부흥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흥회는 은혜 받는 천국잔치입니다. 사탄이 싫어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블레셋이 방해하듯 사탄도 방해공작을 펼 것입니다. 부흥회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여러 환경과 이유를 만들 수 있습니다.
블레셋이 침략하자 백성들은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해 달라고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흩어져 도망을 가든지 아니면 빨리 무기를 구해 싸울 준비를 하는 대신에 주의 종에게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은혜 받은 백성들의 대응방법이 달랐습니다. 아마도 은혜가 없었다면 사무엘을 원망하고 불평했을 것입니다. 왜 하필 이 때 미스바로 모이게 했느냐고 사무엘에게 책임을 전가했을 것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원망했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종일 금식하며 하나님께 회개했던 백성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에게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구원해주실 수 있음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8절입니다.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해주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사무엘이 쉬지 말고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백성들의 믿음을 본 사무엘은 젖 먹는 어린양 하나를 가져다가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백성들의 믿음이 사무엘을 감동케 했습니다. 백성들은 전쟁을 영적인 싸움으로 인식하고 사무엘에게 기도를 우선적으로 요청했습니다. 이렇듯이 은혜 받으면 생각의 전환이 생깁니다. 대응방법을 달리 할 수 있습니다. 블레셋의 공격을 영적으로 대응하여 기도를 우선하였습니다.
사무엘과 백성들이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은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을 추격하여 물리쳤습니다. 강력한 무기도, 잘 훈련된 군사도 없었지만 큰 우레가 블레셋 군대를 어지럽게 만들어 손쉽게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가장 강력한 무기는 기도였습니다.
사무엘은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에벤에셀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뜻을 가진 도움의 돌이었습니다.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것은 지리적 의미와 시간적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에벤에셀은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간증거리였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직접 눈으로 보았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살아있는 간증은 어려움에 봉착할 때 마다 힘이 됩니다. 살아가면서 이런 간증이 있으면 실망하지 않습니다. 에벤에셀은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증거리였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고백하고 감사하는 간증거리였습니다.
이방 신들과 우상을 섬기다가 블레셋에 법궤를 빼앗겼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와 기도를 통해 승리를 체험했습니다. 여기까지 도와주신 하나님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도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큰 우레와 같은 기적이 아니면 간증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면서 우리는 수많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았습니다. 깨닫지 못했을 뿐입니다.
부부의 소중함을 잘 모르다가 둘 중에 하나가 병원에 입원하면 깨닫게 됩니다. 혹은 둘 중에 한 분이 먼저 돌아가시면 그 빈자리를 깨닫게 됩니다. 있을 때는 모르다가 없으면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알게 됩니다. 지금 옆에 사랑하는 가족이 계신 것이 은혜이고 간증거리입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있는 것이 간증거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은 에벤에셀을 세우고 후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전해주기를 원했습니다. 오늘의 간증을 내일로 전해주려 했습니다. 오늘 간증케 하신 하나님은 내일의 간증거리를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에벤에셀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을 간증하는 기념비가 되었다면 오늘 저녁부터 시작되는 부흥회가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증하는 부흥회가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번 부흥회가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을 간증할 수 있는 은혜로운 부흥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까지 모르고 살던 주변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고 간증하는 간증의 은혜가 있는 부흥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미스바의 은혜는
2. 회복의 은혜입니다.(14절 상반절)
14절 상반절,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블레셋이 침략해 왔을 때 사무엘은 온전한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사무엘과 백성들이 합심하여 하나님께 기도할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큰 우레를 발하여 블레셋 군대를 어지럽게 했습니다. 전투준비가 되지 않은 이스라엘이 철제무기로 무장한 강력한 블레셋군대를 물리쳤습니다.
블레셋에 빼앗겼던 성읍을 도로 찾아서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영토를 회복했습니다. 과거에 법궤가 블레셋에 빼앗겼다가 돌아왔듯이 블레셋에 빼앗겼던 성읍을 회복함으로 상황이 새롭게 역전되었습니다. 잃었던 영토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겼던 영적자존감을 회복했습니다. 전쟁에서 패하여 성읍을 빼앗길 때의 아픔과 서러움이 어떠하겠습니까?
(예화)
우리 민족은 병자호란에서 패배하여 인조가 청태종에게 삼전도에서 굴욕을 당했던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일제 식민지로 살았던 36년간의 고통을 잊을 수 없습니다. 6.25전쟁으로 낙동강 이남만 남고 전국토가 공산화 될 뻔했던 위기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해방되었을 때 회복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서울을 빼앗겼다가 수복하여 서울시청에 다시 태극기를 게양하는 회복의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빼앗겼던 성읍을 다시 찾았을 때의 기쁨은 대단합니다. 법궤도 빼앗기고 영토와 주권도 빼앗기고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을 물리치고 잃었던 것들을 한꺼번에 도로 찾는 회복의 은혜를 누렸습니다. 얼마나 감격적이었겠습니까? 영적으로 회복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회복되었습니다.
우리도 잃었던 것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슬픔 속에 방황할 때가 있습니다. 건강을 잃고 질병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물질을 잃고 고통의 세월을 보낼 때도 있습니다. 사람을 잃고 배신감으로 잠 못 이룰 때도 있습니다. 명예를 잃고 수치심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교회를 잃고 주차장에서 예배드릴 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성읍을 회복시켜 주셨듯이 우리의 삶에 그렇게 잃었던 것들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스라엘의 군사력과 힘으로는 철제 무기로 무장한 블레셋 군대를 도저히 이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큰 우레로 이기게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의 비유와 잃은 양과 잃은 은전을 찾고 기뻐하는 목자와 주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공통적으로 잃었다가 되찾은 회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찾은 아버지는 큰 잔치를 배설했고, 양과 은전을 찾은 주인 역시 벗과 이웃을 불러 모아 함께 기뻐했습니다. 회복의 기쁨입니다. 소중한 것을 잃었다가 찾으면 기쁨이 있습니다.
(예화) 욥
욥은 동방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자랑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욥에게 시련이 닥쳤습니다. 한순간에 10남매의 자녀들과 재산을 모두 잃었습니다.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서 질그릇 조각을 가지고 몸을 긁을 정도로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아내마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하며 저주하고 떠났습니다. 생명 이외에 모든 것을 잃고 인생의 파산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욥기의 마지막장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하나님이 욥의 곤경을 돌이키셨습니다. 돌이키시되 갑절로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잃은 것이 있습니까? 도로 찾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갑절로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 147:2-3절은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3]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세우고, 모으고, 고치고, 싸매어 회복시키시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지혜가 무궁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고,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했지만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영원히 종이나 포로로 버려두지 않고 회복시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켜주는 분이십니다.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건강, 가난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물질 그리고 실추된 명예까지 도로 찾아 회복시켜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시편 60:1절에서 “하나님이여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사오나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에돔연합군과의 싸움에서 일시적으로 패할 때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군대가 염곡에서 대승을 거두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다윗도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 승리한 것만은 아닙니다. 국지적으로 전투에 패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이 회복시켜주셨기 때문에 승리했습니다.
예수님은 죄로 인해 마귀에게 빼앗겼던 영혼들을 구원하고 회복시키기 위해 낮고 천한 몸을 입고 친히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각색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과 귀신들린 사람들을 고쳐주셨습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 동안 질병으로 고통 받던 사람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군대귀신이 들려 귀신의 종노릇했던 사람을 고쳐서 온전히 자신의 인생을 살도록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혼자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해결 받고 회복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미스바 부흥회를 통해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빼앗겼던 성읍들을 회복했듯이 오늘저녁부터 시작되는 광성부흥성회를 통해 그동안 잃었던 것들을 도로 찾는 회복의 은혜를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미스바의 은혜는
3. 평화의 은혜입니다.(13절, 14절 하반절)
13절,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14절 하반절,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큰 우레를 맞은 블레셋은 이스라엘에게 굴복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셔서 블레셋이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블레셋과의 평화가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해주시는 평화였습니다. 기도의 사람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하나님이 블레셋 사람을 막아주셨습니다.
그 평화를 군사력으로 유지하려면 얼마나 많은 군사와 무기가 필요하겠습니까? 더구나 블레셋은 철제무기로 무장한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핵무기가 우리를 지켜줄 수 없습니다. 미국이나 우방이 우리를 지켜주어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이 어느 정도 전쟁억지력을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는 평화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강대국이 보유한 무기와 군사력을 똑같이 가질 수 있습니까?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블레셋이 무기와 군사력이 부족하여 이스라엘에게 굴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한 이유가 이스라엘이 보유한 막강한 군사력과 무기가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블레셋 사람을 막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이스라엘을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한시적으로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이었습니다. 기도의 사람 사무엘의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우고 물러나면서 했던 마지막 설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삼상 12:23)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던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막강한 군사력을 지녔던 블레셋이 이스라엘 지역 안에 얼씬도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평화였습니다.
또한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도 평화가 있었습니다. 블레셋과의 문제가 해결되었을 뿐 아니라 주변 아모리와도 평화가 있었습니다. 아모리는 가나안 족속이며 간혹 헷 사람, 브리스사람으로 표현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아모리는 강한 민족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아모리와 같은 무서운 적과도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블레셋에 빼앗겼던 성읍을 도로 찾는 회복의 은혜를 주셨지만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 평화가 깨어진다면 지속적인 은혜는 아닙니다. 에벤에셀 하나님이 호전적인 블레셋을 막아주시고 호시탐탐 노리던 아모리와도 평화를 유지하게 해주셨습니다.
평화는 하나님이 주십니다. 사람이 노력하고 애쓴다 해도 하나님이 평화를 주시지 않으면 누릴 수 없습니다. 시 127:1-2,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하나님이 집을 세워주시고 성을 지켜주셔야 수고가 헛되지 않고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평안하게 잠을 잘 수 있도록 하십니다.
(예화)어항 속에 쏘가리가 들어간 이후 불안한 고기들
불안에 떨고 있는 고기들을 위해 쏘가리를 한강에 놓아준 이후에 어항 속에 다시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내 힘과 노력으로 평안할 수 없습니다. 어항 속에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쏘가리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쏘가리가 무서워서 어항 밖으로 뛰쳐나와도 죽어야만 합니다. 쏘가리를 꺼내야만 평안할 수 있습니다. 대적 마귀를 이길 수 있는 예수님이 도와주셔야만 합니다.
우리도 평화롭게 지내기를 원합니다. 우리교회도 평화롭게 되기를 원합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움과 걱정, 근심이 사라지고 평화롭게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힘과 노력만으로 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곳에 평화가 있습니다.
미스바 부흥회 후에 이스라엘에 평화가 찾아왔듯이 광성부흥성회 후에 우리교회와 가정에 그리고 개인의 삶의 자리에 이런 평화가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미스바의 은혜를 받기 원하십니까?
1.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했듯이 내가 의지했던 우상들을 버려야 합니다. 버릴 것을 버려야 그 손에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질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움켜쥐고 하나님의 은혜를 부어달라고 하면 주실 수가 없습니다. 부흥회에 은혜받기 위해 내려놓아야 할 것은 내려놓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2. 모여야 합니다.
모여서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세상과 물질에 사로잡힌 마음, 명예와 쾌락에 사로잡힌 마음, 우상에 사로잡힌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세상으로 향한 마음을 돌이켜서 부흥회에 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함께 모여야 합니다.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고 했습니다. 온 광성 성도들이 부흥회에 모여야 합니다. 그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님께서도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주님께서 함께 하시고 역사가 일어납니다.
3. 기도해야 합니다.
미스바에 모인 사람은 종일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사무엘이 기도했습니다. 온 백성이 모여 금식하며 회개기도 했습니다. 모여 기도할 때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주의 종과 백성이 함께 기도할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미스바의 은혜는 간증거리가 있는 간증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블레셋에 빼앗겼던 성읍들을 다시 찾는 회복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막으시매 전쟁이 그치고 평화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이번 광성부흥성회에 이런 미스바의 은혜가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옛날설교 > 여러 목사님 설교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6. 8. 21. < 절망에서 희망으로> 고 후 4장 7 ~ 15절 (0) | 2016.08.22 |
---|---|
[스크랩] 십자가 (0) | 2015.07.04 |
여행중 (0) | 2014.03.14 |
기도 (0) | 2014.02.19 |
[스크랩] 이스라엘 성서지도 신학생이 꼭 필요한 지도 (0) | 2013.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