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유한구 목사님 설교

2020.8.30.주일 <문 밖에 계신 예수님> 요한계시록3:14~21절 한마음교회 유한구 동역 목사님

동네 사람들(통하니) 2020. 8. 30. 17:26

2020.8.30. 주일 <문 밖에 계신 예수님> 요한계시록 3:14~21절    한마음교회  유한구 동역 목사님

 

l이 글은 목사님의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hanmaumch.com/

한마음교회 설교영상 https://youtu.be/DSpSgHHfhLI

문 밖의 의미 → 상실( 喪失). 소외( 疏外)

 

예수님이 지금 문 밖에 계십니다.

본문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비대면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인터넷 예배를 드릴 수 없는 교회가 서울에만 1000 교회가 넘는다.

 

교회에 머리되신 예수님이 왜 문밖에 계셔야 하나?

이 시대에 하시고 싶으신 말씀

 

1. 차지도 더웁지도 않기 때문이다.(14 ~ 16절)

본문 요한 계시록3장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하나님 말씀 →  미지근한 믿음 → 토하여 버린다.

긴가 민가 알쏭달쏭한 믿음 → 세상에 속하지도 하나님께 속하지 지도 않은 않은

정체성이 없는 사람 ㅡ 꼭 박쥐와 같은 사람

 

예) 박쥐에 대한 우화.

새와 육지 짐승과 전쟁이 일어났다.

새가 이기면 → 나는 날 수 있으니 새입니다.

짐승이 이기면 → 날개를 접고 쥐 같이 생겼으니 나는 짐승이요 하다가

정체가 드러나고 → 이쪽저쪽에서 다 쫓겨나게 되어 갈 곳이 없게 된 박쥐는

어둡고 컴컴한 동굴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내게 불리하냐? 유리하냐? 에 따라 선택하는 현실의 사람들.

코로나 19로 인한 현실에서 교인들이 설 자리는 없는가?

이런 팻말도 있다

"교회 다니는 가람은 당분간 받지 않습니다"

교인임을 밝히는 것도 힘들어졌다.

마치 코로나의 온상이 교회인 것처럼 되어가고 있다.

이런 시기에 힘들고 어려워도 나의 정체성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나의 삶의 자리에서 좀 더 진지하고 당당하게 그리스도인임을 밝힌다

 

2.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18~19절)

본문. 요한계시록 3장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라오디게아 교회 사람들

목양 목화 산업이 발달하였다.

라오디게아 지역은 지리적 요건이 요충지고 당시 실크로드로 가는 길목의 중요 지역으로 풍족한 삶을 살았다.

동 로마 → 에베소 → 라오디게아 → 실크로드

무역이 발달. 의학 발달 → 부와 명성을 축척함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생각(물질적인 면만 생각)

나는 부족한 것이 없다. 풍족하다 ㅡ 자기 생각으로 판단

예수님의 생각( 삶의 전체적인 면을 말씀)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다 → 정작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있다.

 

인용) 레오나르도 다빈치

  보여줘도 안보는 사람

  보여준 것만 보는 사람

  보이지 않는 것도 보는 사람

→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자신을 평가해 보았는가?

       1.2.3.번 중 어디에 속해 있느느가?

  예수님은 나를 어떻게 평가하실까?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내가 나를 평가하는 「나」

 예수님이. 또는 주변이 평가하는 「나」가 다를 수 있음을 생각하자

코 앞만 볼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나」를 생각하자 ㅡ 10년... 20년 . . .후의 나

18절 연단한 금을 사서 →  부요케 되고  → 흰 옷을 입어 수치를 면하고

       안약을 발라 → 밝히 보라

 

나는 어떻게 살았는지?

 나는 돈도 있고 부자이니 잘 살고 있는 거야...  평생을 살 것처럼 살지는 않았는가?

 영원의 세계를 바라보는 삶

 믿음의 안약을 발라 밝히 보는 삶을 살아야 한다.

 

3. 모시어 들이지 않기 때문이다(20-21절)

본문 요한계시록 3장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예) 두 친구 

목사와 이발사 두 친구가 있었다.

두 친구는 악취가 풍기는 아주 가난한 동네를 지나게 되었다.

누더기를 입은 한 청년이 머리는 산발을 해가지고 지나간다.

이발사

 하나님이 계시다면,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 왜 저렇게 두실까?

 

누더기 청년을 보면서

이발사

 저 청년 지저분하지 않은가?

 문만 열고 들어오면 내가 깨끗하게 해 줄 터인데

목사

 하나님도 마찬가지일세!

 마음 문을 열고 하나님을 모셔서 일하게 하시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일세

 

내 마음은 주님이 들어오셔서 마음껏 축복하실 수 있게 주님을 향하여 열리어 있는가?

 

인용) 윌리엄 홀만 헌트

그림  "세상의 빛"

 이 그림에

문 밖에서 열 수 있는 손잡이가 없어 안에서만 열게 되어 있다.

 

예수님은 인격적인 존재시다 우리를 인격적으로 만나기를 원하신다.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신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모실 때 양손에 든 축복의 보따리를 열어 나를 축복해 주신다.

억지로, 강제로가 아닌 스스로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모시어 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