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사는 이야기 ♪♪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이야기

동네 사람들(통하니) 2010. 10. 8. 21:43

 

 

"아유 어떻허니"
" 창자가 다 달라 붙었으면 어떻허니"
안절 부절을 못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요즘 6학년 손녀 딸이
책 꽂이를 만들어서 니스 칠을 한다고
온 마루가 니스로 번들거린다.
밖에 나가서 해야 할 일을 마루에서 했으니 니스 냄새는 물론
번쩍 거리는 마루를 보니 문득 옛일이 떠오른다.

 

 아주 먼 옛날
내가 17살쯤 가을(10월)-50년이 넘은 이야기


종 중 땅을 경작하는 사람이 음식을 준비하고
 어른들이 모여 시제(시항)를 올리는 날

 

기분 좋은 것 보다 조금 넘치게 취하신 아버지께서
우리 집안과 가장 가까운 친척이신 할아버지와 그 아드님을 집으로 모셔왔다
물론 그분들도 좀 과하게 취한 상태였다.

 

지금은 흔한 술 이지만
그땐 설탕이 귀한 때 라 포도주나 머루 주를 담는 집이 별로 없었다. 
자랑 하고 싶으신 아버지께서는
집안에 늘 준비해 두었던 머루 주를 권하고 싶으셨는데
마침 어머니가 안 계신지라
찬장 늘 있던 자리에서 머루 주를 꺼내서
한잔씩 따라 드렸단다.


짙은 갈색 끈적이는 머루 주를 커다란 유리컵 한잔 가득 씩 따라드렸다.

할아버지께서는
"이거 몇 년 묵은 머루 주래 너도 한잔 마셔봐라"
아들에게 말씀하시고

단숨에 마셔버리셨단다.
그 아드님 역시 귀한 것이라 하니 마시는데

 

어째
오만상이 되면서
"이거 맛이 왜 이래요"
"왜 이렇게 끈적거려요
"
입맛을 다실 때 마다 입이 쩍쩍 달라 붙는단다.
할아버지 왈
" 그거 아주 좋은 거라서 그런 거야. 어서 쭈~욱~ 마시고 가자"
집도 멀고 차 시간도 바쁜 관계로 친척 할아버지 부자 분은 곧 가셨다.

 


그날 저녁 우리 집에선 난리가 났답니다.

 

아버지;- "머루 주 맛이 왜 그래?  홍천 아저씨한테 한잔 드렸는데~~"
어머니;- "머루주가 왜요?"


아버지;-  " 좀 이상하니까 맛을 봐봐"

부엌으로 들어가시는 어머니를 보고
            "아니 마루 찬장에 있는 거"
            "마루 찬장에 머루 주 없는데요"
            "저기 있잖아 늘 두던데 말이야, 저거"
            " 거기 없는데 ????????? . . . . "

 

결국 아버지가 머루 주 병을 가지고 오셨다.


어머니;- "아이구 이걸 어쩌나???"  

 

 

마루에 니스 칠을 하려고 아침에 사서 조금 칠하다 급히 볼일이 있어서 나가신 어머니

 

 


그런 내용은 까맣게 모르신 아버지는 술이 거나하게 취하신 상태라

 


찬장  그 자리니까 당연히 머루 주라고만 생각하신 거다.

 

                                      (항상 그 자리에 소주병에 담긴 머루주가 있었고 니스 병도 소주병과 비슷했다)

 

                                                     

  우린 그 이야기를 듣으며

 그 순간을  상상. . .

 모두 대굴대굴 굴렀다.

  달착지근 하면서 맛있는 머루 주를 먹는

그 분들의 표정이 엉망으로 구겨지고,
 입맛을 쩍쩍 다시는데
끈적끈적 달라붙는 소리가 나고 휘발유 냄새가 났다고 하셨다.

 

 배를 웅켜쥐고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숨도 못 쉴 만큼 웃었다.          

 

그런데 웃다 생각하니 이를 어쩌나.
그 독한 니스를 유리컵으로 한~컵씩 들이킨 그 분들이 탈이 나면 어쩐다지
그 때 부터 걱정이 되기 시작 했다.

 

'내일이라도 부고장이 날아오면 어쩐다지"

'과실치사?'--그땐 이런 말도 몰랐다.
전화도 없고 버스도 하루 두세 번 다니던 시절이라 갈 수도 없고. . . .

근심으로 또 근심 속으로. . . . .

 

 

 

그러는 사이에 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물론 부고 같은 것도 없었다.


다시 시제 날

아버지는 그분들을 또 모셔오셨다.


아버지 하시는 말씀
"머루 주 한잔 하실래요"
"이 사람아 싫네, 안 먹어"

그사이 어머니는 술상을 차려 오셨고 빠질 수 없는 머루 주 . . . .
발그레한 자줏빛 빛나는 흑장미 같이 예쁜 색깔과

달콤한 향기
" 한잔 잡수세요, 이게 진짜 머루 주입니다"
그리고 웃지도 울지도 못 할 이야기.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이렇고 이리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사과 겸 미안 한 말씀을 장황하게 늘어 놓으시는 나의 아버지 얼굴에 아침 햇살같은 미소가 번진다.

 

 

 
"옛 기 이사람, 그래 니스를 먹였어 ?????"
"하 하 하 하  .. . . . "
"하 하 하 하 . . . . . "
호탕한 웃음 소리가 맑고 높은 가을 하늘 저 ~~ 멀리까지 퍼진다.
우린 건넌방에 모여
"키득 키득" 숨죽여 웃었다

그 할아버지는 니스를 잡수시고
뱃속에 있는 모든 기생충이 전멸하여 오래오래 사셨다는 옛날 이야기

 

 

 

그 할아버지도

내 아버지도 이 세상에 안계신다.

지금 내 나이가

돌아가실 때의 아버지의 나이를 다 따라 왔다.

 

 

 옛날 이야기를 적다보니  

아버지가 유난히 보고 싶은 밤이다.

마음이 여리시고 자상하신 내 아버지가 보고싶다.

 


-다음통합검색--

⊙ 시제란? 옛날에 사람들이 불렀던 원 뜻은 시향인데 묘사나 시사라고도 하고,
지금 우리가 부르는 시제라고도 부른다.
시제를 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한 가지는 조상님들께서 돌아가신 날짜를 기억하기 위해서이고,
한 가지는 조상님들의 업적 등을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옛날에는 음력 10월에 5대 이상의 조상의 산소에 가서 시제를 지냈는데,
그 이유는 음력 10월에 걷은 오곡백과를 재물로 진설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음력 10월은 춥고, 가을걷이를 해야 했기 때문에 바빴다.
그래서 요즘에는 계절적으로 편리한 때를 통하여 제사를 지내는데,
대부분 양력 4월에 이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풍습이 바뀌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