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도 못 먹고 집을 나선다.
권사님 어디서 만나요?
마음은 급하나.
식구들 먹을 것 준비하랴
내 치장 차리랴 분주하기만 하다.
340번 버스를 타고 교회 앞으로. . . . . 달리기
어머 벌써 다 모였네
오늘도 잠실 팀이 꼴찌다. 나 때문에.
총 인원 30여명중 단19명만 떠난다
보조 의자 까지 다 펴폈는데도 남은 좌석은 단 세석,
한차 가득 빡빡 할 터인데 . . .. .
맨 뒤에 앉은 사람, 보조 의자에 앉은 사람들은 많이 불편 할 터인데도--- 입밖으로는 말을 못내고 내 속 생각으로만---
좌석이 어떻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얼굴은 싱글 벙글
같이 떠난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여전도 회가 70세 이상이면 한나 반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여전도회로서는 마지막 여행인 셈이다.
묻지마 여행처럼 회장과 몇몇 임원진이 계획한 대로 따라간자. 숙소는 충주 켄싱톤 리조트
우후~~~랄랄랄라~~~
탄금대와 신립 장군의 충혼 탑이 같은 장소에 . . .
왜적의 침입으로 수 많은 병사들의 죽음이 있던곳인데
지금은 우륵 선생의 가야금 소리가 바람 소리와 어우러져 들리는 듯 아름다운 모습만 보이고
세워진 충혼 탑이 이들의 영령을 위로하고 있다
충장공 신립 장군
1546(명종 1)~1592(선조 25).조선 중기의 무신
임경업(林慶業, 1594년~1646년 음력 6월 20일(양력 8월 1일))은 조선 중기의 명장으로 친명배청파(親明排淸派) 무장이었다. 자는 영백(英伯), 호는 고송(孤松), 시호가 충민(忠愍)이며, 본관은 평택(平澤)이며, 충주(忠州) 출생이다. 판서(判書) 임정(林整)의 후손이다.
24세 때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624년(인조 1) 이괄의 난 때에는 반란군을 토벌하여 1등 공신에 책록되었다. 1633년 청북 방어사 겸 영변부사에 등용되어 북방 경비를 튼튼히 하기 위해 의주에 있는 백마 산성을 다시 쌓았다. 당시 누르하치가 만주 대륙을 통일하여 나라 이름을 후금이라 칭하고 명나라와 조선에 싸움을 자주 걸어왔다. 후금의 소규모 부대가 국경을 넘어오자 이를 여러 번 격퇴하여 되돌려보냈다
1978년 충렬사는 정부의 특별지원으로 성역화되었다
정조15년(1791년)에는 왕이 친히 글을 지어 비석에 새겨 전하게 한 "어제달천충열사비"이다. 국가의 위기가 있을 때 이 비석이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오고 있으며 최근에는 6.25 사변 때 눈물을 흘렸다는 해설자의 설명이 있었다.--위키 백과 참고--
왼 쪽-어제달천충열사비각. 왼쪽-부인의 충절을기르는충절비각 어제달천충열사비
임금이 직접 써서 하사한 현판이며 낙관은 왜정 때 도난을 당했을 당시 회손 되었다고 함
현재의 현판은 성역화 할 때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리라고 함--해설자의 설명
맛있는 된장 찌개로 점심을 . . . 아이고 배고파 밥 빨리 주세요.
시원하게 물놀이도 즐기고--1급 청정 수-맑고 깨끗하다.
산행 -신륵사가 여주에만 있는게 아니네??????
박달재 옛길을 걸으며-- 작업하는 차들이 많아 위험하다고 더는 못오르게 한다.
배론성지
배론 성지의 모습
배론 신학교는 충청북도 기념물 118호로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에 위치하고 있다.
금월봉 휴게소
와우~ 이 멋진 포즈 --우리는 50대이고 싶어라???????????
일지매 촬영장
이분 오늘 기분 좋았을까?
모처럼 함께 찍었는데 촛점좀 잘 맞춰주시지 . . . . .
단양에서 그 유명한 마늘을 사는것을 끝으로
꿈결 같이 이틀이 지났다.
차 안에서 찬양으로
잠자리에서는 찬송과 기도로 마치 41여전도회 부흥회와 같이
은혜가 충만하였다
서로 부둥켜 안고 기도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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