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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동네 사람들(통하니) 2006. 5. 26. 18:06
1965년도인가? 
교무실에서 하루를 마감하며 정리를 하고 있는데
"허, 참" 혀를 차며 창밖을 바라보는 선생님들의 시선을 따라 가 보았습니다.
 낙엽을 마구 휘둘러 
"휘이익!" 
"휘이익!"
운동장 이 구석 저 구석으로 몰아가는 스산한 찬 바람이 옷속을 파고드는 11월 어느날
운동장  구석에 한 아이가 이 일을 해야 할지 말아야할지 망설이는 듯 
몸을 굽혀 무언가를 줍다가 서 있다가를 반복하고 있는 처량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우연히 또 창밖을 내다보게 되었는데
그 아이는 아직도 운동장 끝자락에서 온몸을 휘감아버리는 바람과 함께 서있는 것이었습니다.
"허 참 "  담임선생님의 혀 차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안쓰럽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여 물었습니다.
 "선생님, 저 아이는 왜 저기서 혼자 저러고 있습니까?"
 "아, 저 아이는 4학년 우리 반인데 운동장 청소 당번이랍니다."
 "저 넓은 운동장을 혼자서---"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한 분단 (7-10명 정도)이 청소 당번인데 날이 갑자기 추워지니까
다른 애들은 다 도망가고 혼자만 남았고, 혼자 청소를 하자니 운동장이 너무 넓고,
다른 애들처럼 도망가자니 청소를 다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고, 
그래서 저러고 있는 거랍니다.
그 아이는 흑인 혼혈아 인데 공부는 잘못하지만 자기가 할 일에 대하여 꾀를 쓰는 적이 없어서
저렇게 당하는 일이 많답니다.

"씨가 달라서 그런가? 
아무튼 달라" 라고 하시면서  그 아이를 불러서 집으로 보내셨습니다.
"한국 사람의 유전자 속에는 
외세의 침략에 너무 시달리다보니 
얍삽 빠르고 이익된 일에만 전력을 다하며
아부하는 기회주의가 인박혀 있는지 모르지" 
그때 그 담임 선생님의 씁쓰레한 말 한마디가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어 
스산한 가을바람이 낙엽을 몰고 가는 날이면 
아직도 그 일들이 문득 문득 떠오른다는 어떤 분의 말이 생각납니다.
잘사는 나라의 대열에 한발 가까이 갔다는데 아직도 우리의 정신 속에 잘못 인 박혀있는 
그 유전자가
힘들고 어려웠던 한해의 11월을 보내면서
평화가 온 것 같은 평안한 우리의 속마음에 도사리고 있다가 불쑥 튀어나와서

‘어렵고 힘든 일 
빛나지 않는 일, 
귀찮은 일은 남이 하라하고 
빛나는 일만 찾아 해야지"
“그리고 봉사가 아닌 나를 자랑하는 일에만 전념하자“"
그게 내속에 박혀버린 유전자 같아서 자꾸 나를 뒤 돌아 봅니다.
지금이 어느시대인데 그런 고리타분한 말을 늘어놓느냐고
2006년도라고
타박하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때로는 보이기도 하고--
생각들이 많이 달라졌겠지요.
2005/112/3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