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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의 권세(3)--Kenneth E. Hagin 지음 김 진호 옮김

동네 사람들(통하니) 2006. 6. 3. 00:34

 

 

 

제  3  장
         

 

               그리스도와 함께 앉음
 
  마태복음 28;18은 “권능“ 대신 ”권세“란 단어가 사용 되어야 했던 또 다른 구절입니다.
  흠정 역에는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power)이 내게 주어졌다.” 고 하였습니다. “권능”이 아니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authority)가 주어졌다”라고 해야 맞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셨을 때 그는 자기의 권세를 교회에 인계하셨습니다. 그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신자들은 그 몸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권세는 지상에 있는 그의 몸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권세는 지상에 있는 그의 몸을 통하여 영속되어야만 합니다.(에베소서 전체와 다른 서신서 들을 통하여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을 설명하기 위해 사람의 몸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아버지 우편, 즉 권세의 자리에 앉아 계시며 우리도 그와 함께 앉아 있습니다. 당신이 역사를 조금 안다면 왕이나 교황의 우편에 앉는 것은 권세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와 함께 살아났습니다.  이것은 미래에 하나님께서 행하실 어떤 일이 아닙니다. 그가 이미 그것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일


   

엡 1;18-23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 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온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 이니라.

 

  특별히 19절을 유의해 보십시오,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다른 말로 하면, 예수를 죽음에서 살리심은 하나님의 권능의 엄청난 표현이었고, 이것이 이제까지 기록에 남겨진 것 중에서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일이었습니다. 부활은 사탄과 모든 그의 군대들에 의해 방해받았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군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몰랐고 패배를 당했습니다. 주님은 살아나셨고 승천하셔서 지금은 사탄의 군대보다 훨씬 위에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골로새서 2;15의 말씀이 기억나십니까?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 하셨느니라.” 이것이 바로 우리가 다루어야 할 예수께서 무찌르셨던 그 마귀의 권능입니다.
  다른 번역본에는 예수께서 “그들을 무력하게 하셨다.” 혹은 “마비시켰다” 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고대에는 승리한 임금들이 포로들을 잡아가지고 돌아와서 시가행진을 하며 자신들의 승리를 공공연히 자랑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마귀를 무찌르신 후 세 개의 세상, 즉 하늘과 지옥과 땅 앞에 승리를 과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그의 성경에 기록해 놓으시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어떤 일이 일어 났었는가를 알 수 있게 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 묻힘, 부활, 앉으심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친히 그리스도를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위에 뛰어나게” (엡1;21) 하셨다는  사실을 알기 원하십니다
.

 

 

        우리 권세의 근원

 

  우리 권세의 근원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이 부활과 그리스도를 높이신 것에서 발견됩니다.

에베소서 1;18에서 성령께서 바울을 통하여 에베소인 들의 이해의 눈(그들의 영)이 진리들에 눈뜨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을 주의하십시오.


 
성령님은 모든 믿는 교회들이 가르침을 받기 원합니다. 그러나 믿는 자의 권세에 관한 진리는 그동안 많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간과되어 왔습니다.
  당신은 지식으로는 믿는 자의 권세를 결코 이해할 수 없으므로 이에 대한 영적인 계시를 얻어야만 합니다. 당신은 믿음으로 그것을 믿어야만 합니다.

      엡2;1-7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       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와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 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   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타내려 하심이니라.
 
  첫 절에는 

“너희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성령님은 바울을 통하여

 “그의 힘의 강력하게  역사하심을 따라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음에서 살리시고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을 때” 라고 했습니다.
  보십시오. 에베소서 1;20에서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살리셨다고 표현하고 있듯이, 에베소서 2;1에서는 그의 백성을 살리셨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우리도 죽음에서 살아난 것입니다.
  제 2절을 더 읽어 보면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5~6절)라고 하였습니다.
  그 머리(그리스도)와 그의 몸(교회)이 함께 일어난 것을 주의 하십시오, 더욱이 그의 권세는 머리와 몸이 하나이므로 머리에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몸에도 주어졌습니다.(당신이 어떤 사람을 생각할 때 머리와 몸을 하나로 생각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아는 한, 교회들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 것을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와 함께 앉아있는 것을 믿지 않습니까?
  이 성경 구절의 일부가 옳다면 전체도 옳아야 할 것 아닙니까?
  만일 교회로서의 우리가 바로 그리스도요, 우리가 살아났으며, 그리스도의 일을 한다는 계시를 갖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지금까지 우리는 이것을 제한된 방법으로만 행하여 왔습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권세는 그리스도의 몸의 각 지체들에게도 속한 것이며, 우리가 언제든지 사용 가능한 것이란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의 삶은 대 변혁을 맞이할 것입니다.

고전 12;12-14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 니라. 몸은 한 지체 뿐 아니요 여럿이니


고전 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인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시다!

 

고후 6;14,15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믿는 자는 "의롭다“고 하였고 불신자는 ”불의하다“고 하였습니다. 믿는 자는 ”빛“ 이며 불신자는 ”어두움“이라 하였습니다. 믿는 자는 ”그리스도“이며 불신자는 ”벨리알“이라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앉다
               

  고린도전서 6;17에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한 영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높으신 폐하의 오른 편에 앉아 있습니다. 만물이 우리 발아래  놓여져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그동안 우리가 “십자가” 신앙만을 설교했는데 “왕좌”의 신앙도 설교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사람들은 십자가에 자기들이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성령 세례를 받고도 십자가로 다시 돌아가서 지금까지 거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십자가로 가까이, 십자가로 가까이...”하며 우리는 찬송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기 위해 십자가로 나올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 머물러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자! 오순절로, 승천으로, 왕좌 앞으로 전진합시다!  십자가는 사실 패배의 자리이지만 부활은 승리의 자리입니다.


  당신이 십자가를 설교할 때, 당신은 죽음을 설교하고 있는 것이며 성도들을 죽음에 버려두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죽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 있습니다. 장소적으로 말하면, 그곳이 지금 앉아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권세의 장소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자의 권세에 관하여 아무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간신히 구원받았으며 겨우 따라갈 수 있는 길을 걸으며, 사는 동안 마귀의 지배를 받는 인생을 살아야만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의 결박으로부터 구원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지만, 하나님은 그와 함께 우리를 모두 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이제 어떻게 당신의 권세의 자리를 차지하는지를 배우십시오.
  하나님 보좌의 오른 편은 전 우주의 권능의 중심입니다. 보좌의 권세를 사용하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께 맡겨졌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그 몸을 가지고 그의 원수들을 그의 발등상으로 삼으실 아버지의 때를 기다리며 그 곳에서 그의 권리를 완전히 소유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3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느뇨.”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사람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로 올리심으로 우리가 그의 보좌뿐만 아니라, 그의 권세도 함께 소유하며 그와 함께 앉아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라고 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확대된 의미로 번역된 성경(The Amplified Bible)을 포함한 여러 다른 역본에서는 “이  세상에서 왕으로서 다스리다”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하늘나라에 가서 만 다스릴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이 세상에서 왕으로 다스리며 살아야 합니다. 왕은 무슨 말을 하든지 그것이 법이 됩니다. 왜냐하면 왕은 최고의 권세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왕권을 상징하는 그 권세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약간의 영적 이해력을 가졌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보다는 공중의 권세들을 능가하는 약간의 권세를 행사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은 우리 모두 다 이 영적인 이해를 갖기를 원하고 게십니다.

 

                 균형을 유지하기

 

  성령께서는 바울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지혜와 이해, 그리고 마귀의 능력 및 인간의 마음을 끊임없이 조종함으로 생기는 문제들을 능가하는 권세를 가지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교회가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믿는 자의 권세를 포함하여 어느 주제라도 극단까지 밀고 나간다면 그것은 해롭게 될 뿐 축복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구원을 받았고 성령 충만하였습니다. 그는 참된 언행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공부해 오고 있는 바로 이 성경 절들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그리스도라면,

나는 그리스도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니,

 나는 하나님이다”라고 논리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매우 인기 있는 이단 종파를 창설했고 사람들은 그를 숭배했습니다.


  들판의 불같이 광신주의나 극단에 빠지는 것은 마치 도로의 양쪽 끝에 도랑이 있는 곳에 빠지듯이 쉬운 일입니다. 우리는 모두 길 한 가운데로 지나가면서 균형을 잡읍시다.


  금세기가 시작되기 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사역을 하는 도중 신유에 관하여 계시를 받았던 스코틀랜드 사람인 존 알렉산더 도우위는 그의 평생에 대양을 여러 번 건넜습니다. 그는 폭풍우를 많이 만났고 폭풍우가 쳐들어 올 때 마다 그는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폭풍우를 꾸짖었었고 그러면 폭풍우는 항상 그쳤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에 놀라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 14;12)라고 말씀하셨으니 까요.

 

어떤 이는 “더 큰일”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자, 그러면 예수께서 하셨던 일부터 먼저 알아보고 “더 큰일”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예수께서는 오직 선택된 몇 명의 사람들만 이런 일들을 하리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그를 믿는 사람들이 이런 일들을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믿는 자의 권세에 관하여 우리의 심령을 가르치고 교육하심을 우리가 자세히 살필 때 우리가 이 위대한 진리 가운데 더욱 더 행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