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자극적이다. 일본의 자연 재난은 이질적이다. 쓰나미·지진·화산 폭발은 한국인에게 낯설다. 때문에 재해에 대응하는 일본인의 방식은 새롭고 강렬하게 다가온다.
거대한 재앙을 흡수, 극복하는 일본의 문화는 특별하다. 위기 대처에 무기력하지 않으면서 침착하다. 줄 서기와 순번 지키기에 착실하다. 주유소·수퍼마켓의 새치기·끼어들기도 없다. 상점 약탈도 찾기 힘들다. 개인의 이기적 돌출도 없으며 이웃을 생각한다. 생사의 다툼 앞에서 그 같은 집단적 질서 의식은 경이롭다.
국가적 슬픔의 무게는 엄청나다. 하지만 절망의 한복판에서 울부짖음이 없다. 흐느낌은 작고 슬픔을 삭인다. 일본 TV에서 유가족의 통곡을 찾을 수 없다. 시신(屍身)은 방영하지 않는다. 절규와 분통, 고함과 호들갑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충격적 인상을 남긴다.
일본 동부 대지진 직후다. 인천공항으로 일본에서 한국인들이 귀국했다. 어머니가 딸을 안고 안도의 큰 울음소리를 낸다. 한국의 TV 뉴스 장면이다. 그 어머니의 반응은 이해할 만하다. 우리 TV 카메라는 그런 모습을 찾아 찍기에 충실해 왔다. 하지만 그런 보도 행태의 격조는 형편없이 떨어진다. 그런 취재 관행은 어설프고 초라해졌다.
그 풍경은 우리 시민의식을 되돌아보게 한다. 천재지변 탓에 비행기 출발이 늦어도 창구에 몰려가 항의하는 가벼움과 어이없음, 준법 대신 목소리 큰 사람이 행세하는 떼 법, 끼어들기 주행, 남 탓하기의 풍토를 부끄럽게 한다. 우리 부모 세대들은 그렇지 않았다. 자기 탓, 자기 책임부터 먼저 생각했고 염치를 지키려 했다. 그들은 한강의 기적과 국가적 풍모를 만든 세대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 남 탓하기와 떼 법의 억지와 선동의 싸구려 사회 풍토가 득세했다. 일본발 문화 충격은 그 저급함을 퇴출시키는 자극이 될 것이다.
일본은 역사적 자극제다. 일본의 성공은 한국을 분발시켰다. 소니, 도요타, 일본의 스포츠도 한국을 자극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야구의 성취는 분발과 경쟁의 산물이다. 일본은 한국과 함께 동아시아를 경영한다. 역사의 공동 연출자면서 주연이다. 그 역할의 비중이 한쪽으로 기울면 거센 파란이 인다. 전쟁이 나고 비극적 역사가 전개된다. 임진왜란과 한·일 강제병합이 그랬다. 독도 문제는 그 후유증이다. 진정한 평화는 국력이 비슷할 때 유지된다. 이제 한국은 커졌고 성숙해 있다. 우리 국민 사이에 ‘힘내라 일본(간바레 닛폰)’ 운동이 퍼지고 있다. 자발적 확산이다.
그 바탕에는 한류가 있다. 대중문화 개방은 김대중(DJ) 대통령 시절 때다. 그때 DJ는 이런 내용의 연설을 일본 의회에서 했다. “한·일 관계는 참으로 길고 깊다. 양국은 장구한 교류의 역사를 갖고 있다. 역사적으로 양국 관계가 불행한 것은 400여 년 전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7년간(임진왜란)과 금세기 초 식민지배 36년(한·일 강제병합)간이다. 50년도 안 되는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 이상 걸친 교류와 협력 전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그 연설은 과감했다. 임진왜란과 병합을 빼면 ‘선린(善隣)의 1500년’이라는 인식은 신선했다. 한·일 관계를 어두움과 갈등에 맞추는 시선을 거부한 것이다. 그 대담한 접근을 확대해야 한다.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도 일본과의 친선은 긴요하다. 북한 급변 사태 때 주민 탈출의 쓰나미가 몰려올 것이다. 한국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교차점에 있다. 때문에 일본·중국 모두와 친해야 한다.
남을 돕는 우리 진심을 실감나게 전달해야 한다. 그것은 국가적, 국민적 투자다. 일본은 우리 동반자다. 양국 서로가 미래를 위한 자극이 돼야 한다. 재난을 극복하도록 격려해 주는 사이가 돼야 한다. 그것이 일본 대지진 이후 양국 친선의 롤 모델이다.
박보균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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